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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의 회사, 10번의 퇴사

학교야, 학원이야? - D아카데미 전성기, 하

by 유고 담요 2025. 3. 1.

사실 바쁘다는 이유로 대전을 제대로 즐길 시간도 없었어. 어쩌다 대전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이나 전국에서도 유명한 빵집을 찾아가 보고, 이름도 모르는 맥주집에서 가볍게 맥주나 한 잔 하는 정도였지. 일하는 거와 집을 치우는 건 다른 주제였지. 숙소로 잡은 원룸은 말 그대로 돼지우리였어. 대부분 끼니를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우고, 주말이면 침대와 한 몸으로 지냈어. 거기다 이제 2년이 다돼 가는데 계약도 연장해야 하는 신경 쓸 부분도 있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

그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려. 어머니 전화야. 그래서 받았지.
"네, 어머니."
"아빠랑 한 십 분 내로 원룸에 갈 거다."
순간 심장이 철렁했어. 큰일 났잖아. 그간 내가 창원을 내려가거나 하면 어머니가 반찬이라도 챙겨 주셔서 내가 가지고 오곤 했었고 처음에 방을 구할 때 말고는 찾아오시지 않았지. 근데 대전에 올라오신다니... 정신을 차리고 집을 둘러봤는데, 이게 십 분만에 정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최대한 모든 힘을 끌어모으고 순식간에 치운다고 했지만 커다란 종량제 봉투에 다 구겨 넣고 있을 때 원룸으로 부모님이 들이닥쳤어.

"이게 사람 집이야, 돼지우리야!!"
곧바로 어머니의 잔소리가 시작됐어. 뭐 매번 술 마시면 안 된다고 끊으라고 성화였는데 맥주 캔이 나뒹구르고 있었고 말이야. 무릎을 꿇고 듣지는 않았지만 거의 융단폭격 수준이었어. 결국 부모님의 결론은 이랬지.

"이렇게 살 거면 정리하고 창원으로 내려와."
한 번의 잘못으로 이렇게 되었다기 보단 그동안 쌓여 온 거야. 멀리 떨어져 있지, 엉망으로 살고 있지, 걱정이 되니 같이 살려고 했는데 이렇게 본보기를 보였으니 잘 된 거였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D아카데미의 퇴사를 결정하게 된 순간이었어. 

"창원에도 일자리가 있을 거 아냐? 빨리 찾아보고 해."
끊어지지 않은 잔소리와 함께 원룸에서 부모님이 떠나시고 그 이후부터 학원에 나가 다음 이직할 자리를 찾아보기 시작했어. 이때가 D아카데미에서 일한 지 1년 반이 지난 시기였지.
 
이제는 옛날처럼 막무가내 퇴사를 해놓고 다음 일자리를 마련하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아. 세 번이나 급격한 이직 후라 좀 더 신중을 기하기로 했어. 이틀 정도 시간을 들여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 등을 전부 수정하고 취업 사이트 X코리아에 최신 정보로 갱신을 했지. 이게 너무 시간이 많이 드는 거야. 이때 중요한 걸 배우게 됐어. 이력서, 자기소개서는 하나의 일이 끝날 때마다 수정해놔야 한다는 거야. 그래야 시간 낭비를 안 해.

창원에 있는 회사를 하나 찾았어. E에스아이라는 회사였는데 회사 소개에 보니 직원수가 80명이나 되는 큰 회사더라고. 하지만, 지원 가능 연령이 1977년생부터였어. 난 한 살이 많았거든. 여기 말곤 금요일까지 찾아봐도 마땅히 지원할 회사를 찾을 수가 없었지. 곤란하더라고. 계속 고민하다 금요일 날 오후에 등록돼 있던 E에스아이 담당자에게 메일로 이력서를 보내면서 짧은 글을 썼어. 요약하면 이런 거지.
'죄송하지만 제가 귀사의 채용 기준 연령을 초과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지원하고 싶어 고민하다가 오늘에야 메일을 보내면서 제 사정을 말씀드립니다. 이력서 내용이라도 살펴봐 주시고 재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고 말이지. 한 마디로 강수를 둔 거야. 제발 읽어만이라도 달라고 말이야.

근데, 됐어! 연락이 왔고 면접을 봤지. 그러니 창원으로 돌아갈 수 있잖아? 곧바로 김 팀장에게 퇴사하겠다고 통보를 했지. 부모님이 와서 원룸 사건이 일어나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모두 진행된 일이었어.
 
"왜 그만두려고 해요?"
학장이 부르더군. 그만둔다고 하니까 말이야. 보통 그만둔다고 하면 알았다고 하고 그냥 사표 수리를 하는데 붙잡는 거 같으니 기분이 좋더라. 돼지우리에서 사는 걸 부모님께 들켜서요라고 말하기는 민망해서 뭐라도 얼버무릴 게 필요했어. 
"아, 네... 부모님이 원룸에서 사는 모습이 보기 안쓰러우신가 봐요. 고향에 내려와서 같이 살자고 하시네요. 나이도 있는데 결혼할 여자도 없고, 원룸 같은 데 사니까 그런거라시면서..."
뭐, 없는 말은 아니니까... 음. 너무 심하게 바꿨나? 

그런데 가관인건 학장의 입에서 나왔어. 잠시 고민을 하던 학장이 이렇게 얘기하는 거야.
"그럼, 여기서 집을 구하면 되지 않을까요? 전세 자금이 있으면 될 거 아닙니까? 대전에서라면 사천 정도면 충분하겠는데... 제가 이자 없이 빌려드리죠."
눈이 번쩍 떠지는 제안이었지. 내 1년 연봉을 넘는 돈을 빌려준다고? 날 뭘 믿고 말이야. 그것보다 의아했어. 내가 학장이 그렇게 돈을 빌려줄 만한 사람인가 이거야.

거기에 혹하지 않았다면 사람이 아니지. 그대로 학장에게 자금을 꿔서 어찌해 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어. 4,000만 원 이라잖아!!
이내 그건 나를 여기에 옭아맬 족쇄일 거란 거도 깨닫게 되면서 이렇게 말하고 거절하게 됐지.
"학장님 말씀,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주시니 말이에요.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고향으로 내려가는 거라 여기서 전셋집을 구하는 거하고는 다른 문제라서요."
그러자 학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하더군.
"음... 그렇긴 하죠. 안타깝네요. 장 선생과 계속 일을 했으면 싶었는데요."

어쨌든 빠르게 마무리가 돼서 세 번째 MS솔루션 개발자 과정의 마지막 몇 주가 남은 상황에서 퇴사를 하게 됐지.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취업이나 수료는 제대로 확인도 못하고 끝나게 되어 아쉽긴 했어. 대신 내가 나올 때까지 한 명도 그만두지 않아 100퍼센트 수료는 한 거 같았어. 1년 8개월의 IT강사의 경력이 끝난 거지.

 

한참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직업학교는 강사의 한 시간 강의하는 강의료를 책정해서 노동부에서 훈련 기관에 지급하는 방식이야. 결국 시급이란 거지. 나머지 교재 구입비 등을 빼고는 특별히 그 외에 나라에서 주는 돈이 없어. 강사의 시급이 가장 큰 수입원이라는 거야. 2010년 정도의 직업훈련 강사 시급 기준이 아마 10만 원 초반이었을 거야.

그런데 아까 내가 얼마 받았다고 그랬는지 기억나? 대략 연봉 3,000만 원. 그럼 세금 같은 거 생각 않고 순수하게 한 달에 250만 원을 받는 거지. 한 달에 일하는 날이 주말 빼면 보통 22일이잖아. 그럼 하루에 일당으로 11만 4천 원이라고 볼 수 있어. 그리고 대략 하루에 4시간에서 8시간을 강의를 하니 6시간으로 생각하고 계산을 해보자고. 그럼 한 시간에 1,9000원 정도의 시급을 받는 거랑 같은 이치야. D아카데미는 시급으로 10만 원을 받아. 그리고 강사에겐 2만 원을 주는 거지. 그럼 8만 원이 남네?

대충 계산한 거지만 학원 운영비나 여러 항목을 다 빼고 나도 내가 계산해 보니 1억 원 가까이 되는 돈이 한 달에 생기더라고. 그럼 1년에 12억이잖아? 대략이지만 최소 1년에 10억씩 순수익이 생긴다는 거지. 그러니 학장이 대뜸 4천만 원을 빌려주겠다는 거라구.

D아카데미의 운영을 험담하는 게 아냐. 어차피 직장인은 월급으로 페이를 받는 거야. 이윤을 남기는 건 대표의 몫이고. 이렇게라도 문제없이 회사를 운영하고 직원들이 힘들 때 손을 내밀 수 있는 대표가 훨씬 낫다는 걸 얘기하고 싶은 거지. 직원들 월급도 못줘서 허덕대는 좋소 보다야 훨씬 낫지. D아카데미는 그 뒤로도 문제없이 꾸준히 잘 운영되었고, 거의 매년 우수 취업훈련 기관 평가를 받으며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

 

취업훈련 강사로 일해본 내가 불만스러운 부분이 하나 있는데, 인터넷에 보면 일부 사람들이 직업학교를 절대 가지 말라고 하며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는 걸 많이 봐왔어. 특히, 자신이 다녀보니 취업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서 말이야. 어떤 곳이든 어떤 집단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집단의 크기와 상관없이 대게 5퍼센트도 되지 않는다는 거야. 성공하려면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과 자기 시간의 희생이 필요한데, 그런 건 생각을 안 하는 거 같아. 고등학교 때 모든 사람이 다 전교 1등을 하는 게 아닌 것처럼 여기도 마찬가지란 거지.

대충 노력 없이 6개월 다니다 보면 취업하는 게 아냐. 반년만 공부하면 IT기업에 취업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와서 막상 수료해 보니 대기업에 못 가고 중소기업을 전전하게 된다고 불만을 하는데, 대기업에 가려면 어학도 준비해야 하고 다른 IT 자격증도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런 준비는 하나도 하지 않고 나중에 못 가게 되니 취업훈련은 엉망이다, 실패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경우를 일반화시키는 오류를 일으키는 사람들이고 그 말만 듣고 인정하는 건 잘못된 판단이라는 거지. 

아님 나처럼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다음 대기업으로 이직을 하라는 거야. 중소기업에서 대기업 일을 하다 보면 대기업에서 제의가 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 그걸 덥석 물면 되는 거야.

 

하여튼 이렇게 해서 D아카데미의 일을 접고 창원으로, 다시 경남 지역으로 다시 내려오게 됐어. 다시 지방생활이 시작된 거지. D아카데미에서 일을 해보면서 배운 경험도 있었지.

먼저, 이력서, 자소서, 포트폴리오는 프로젝트, 과정, 큰 업무가 하나 끝날 때마다 바로바로 수정해서 최신판으로 갱신해 놓으라는 거야. 그래야 이직하는 게 수월해. 나중에 몰아서 적으려면 기억이 안 나서 시간이 엄청 들어.

그리고, 잔소리를 안 들으려면 집을 자주 치우자. 안 그러면 부모님한테 혼나. 결혼하기 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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