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같은 중소기업 - E에스아이, 상

2025. 3. 8. 23:0420년간의 회사, 10번의 퇴사

E에스아이... 정말 할 말이 많은 곳이지. 중소기업을 전전할 때 가장 오래 다닌 곳이기도 하고 말야.

E에스아이에서의 면접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시작됐어. 대전에서 어렵게 하루 전날 내려온 뒤 오랫만에 집밥을 먹은 금요일 오후에 도착한 회사는 창원의 유명한 공단 내 조립식 공장 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었어. 늘 콘크리트 건물에서만 면접을 봐왔던 나로서는 면접 장소가 너무나도 당황스러웠지. 1층부터 2층까지 높이가 엄청 높은 건물들이 생산직 공장 건물의 보통 모습이라더군. 그리고 2층에 올라와서 보이는 파티션마다 앉아있는 수십 명의 직원들의  모습도 생소로웠어. 그렇게 들어선 약간 어두침침한 미팅룸의 두 면접관이 환하게 나를 맞아주었고, 그 미소에 긴장이 풀리며 그렇게 어려운 자리는 아닐 거란 예감이 들었지.

면접관은 윤 부장과 제 차장이었는데 윤 부장은 덩치가 컸지만 푸근한 인상의 소유자였고, 제 차장은 나보다 젊어 보이고 슬림한 몸매를 가진 사람이었어. 두 사람 다 옷은 아주 진한 진청색에 회사 로고가 박혀있는 작업복을 위에 입고 있었지. 하긴 들어올 때 사람들도 다 옷이 똑같긴 하더라구. 진짜 면접은 어렵지 않게 마무리가 되었어. 머 이렇게 긴장감이라고는 1도 없는 면접이 있지라고 생각하고 앞에 놓여있던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지.

"박 명우 교수님은 잘 지내시는 가?"

윤 부장의 질문에 놀라 눈만 꿈뻑이고 있었어. 대학원 담당 교수님 이름이었으니까... 그리고, 나서 윤 부장이 웃으며 이은 말에 면접이 이렇게 편안한 이유를 알게 됐지. 

"내가 아마 연성 씨보다 사 년 선밸껄? 구일학번이니까..."

"선배님이셨습니까?!"

동문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였어. 그러고 나니 더 허물없는 대화가 오고 갔지. 윤 부장과 한 십분 안되게 떠들었나? 옆에서 웃고만 있던 제 차장이 다음 질문을 하는데 또 놀랄 수밖에...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혹시 박 태윤?"

이런! 제 차장은 고등학교 1년 선배였던 거야. 한 명 정도 뭐 학연이 있을 수야 있는데, 면접관 두 사람이 다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이라니... 곧 서류에서 나이 제한이 있는 이유를 알게 됐지.

"우리 제 차장이 이번에 새 직원을 뽑을 때 나이차이가 좀 나는 부하직원을 바랐는데, 연성 씨 연락이 온 거야. 나이 차이가 안 나면 같이 일하기 힘들다고 하면서... 근데 고등학교 선후배면 뭐 어려울 것 없잖아요?"

그 말에 물론 웃었지만, 윤 부장이 말을 편하게 놓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하는 게 더 웃겼지. 하지만 곧 편하게 말을 놓더라. 이래서 학연, 지연, 혈연이 무서운 거야... 실무 면접이 끝나고 뭐 합격 여부도 얘기 없이 사장실로 이동했어. 회사 소개에 직원 수가 80명 정도로 적혀있었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 마우스 클릭 소리를 내면서 일하고 있었지. 박 사장은 윤 부장보다 더 푸근한 인상의 동네 아저씨 같은 얼굴의 사람이었어. 키는 많이 작았지. 

"들어보니 윤 부장이 대학 선배고, 제 차장이 고등학교 선배라며? 하하. 좁은 세상이지... 잘해 봐요."

뭐야. 합격한 거야? 그리고는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고향에서 주말을 보낸 뒤 일요일 점심 식사 후 대전으로 올라와 면접을 마쳤지. 열심히 일하고 있던 수요일에 합격 전화를 주더군. 이제 창원으로 내려갈 준비는 된 거야. 부모님 집이 있고 원룸의 얼마 안 되는 짐만 가지고 내려오면 되니 아주 간단한 이사라 걱정도 없었지.

 

대전의 D아카데미에선 2월 말 금요일까지 일을 하고 퇴사를 한 뒤, 주말을 보내고 곧바로 3월 2일부터 E에스아이로 출근했어. 최소 한 주든 몇 주라도 쉬는 게 보통인데, 정말 주말 쉬고 회사 출근하는 것처럼 첫 출근을 했어. E에스아이는 유명한 ◇◇그룹의 자회사인 ○이라는 회사의 협력업체였어. ○은 지하철, 철도 등의 생산과 철도 관련 인프라 건설 쪽을 담당하는 대기업이지. ◇그룹이 자동차, 철도, 건설 뭐 다 하는 기업집단이니 모르는 사람이 없지. E에스아이는 여기에서 지하철 및 철도 설계, 사용자나 관리자 매뉴얼 인쇄 같은 걸 오더 받아서 작업 후 납품하는 회사인 거야. 가장 큰일이 지하철, 고속철 설계와 관련된 업무였고 그 많은 직원들이 다 CAD 설계를 맡아서 하는 거였어.

박 사장은 이 대기업에서 과장까지 경력을 쌓다가 퇴사했고, 전관예우라고 볼 수 있게 회사 인맥을 활용한 연결고리로 설계 및 매뉴얼 프로젝트를 수주해서 거의 독점하듯 회사를 운영해 온 거야. 거기에 이전까진 종이로 인쇄해서 만들던 매뉴얼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제공하는 일이 추진되고 있었고, 윤 부장과 제 차장이 이걸 개발하고 있었대. 그러다 개발자가 더 필요해 사람을 구하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 두 사람의 학교 후배인 내가 뽑히게 된 거지.

소프트웨어 개발팀에 윤 부장, 제 차장 그리고 내가 1팀, 박 부장이라는 사람과 최 과장이 2팀, 경영팀의 김 이사가 우리 팀을 총괄 관리하는 작은 부서였어. 나머지 직원들은 전부 설계팀에 속했는데 회사 업무량이 많을 때는 아르바이트 직원까지 100명에 육박할 때도 있었대. 작년 말에는 연말 인센티브를 몇 백만 원씩 받았고, 해외 프로젝트로 아일랜드나 미국도 몇 번씩 갔었대. 이전 회사에서는 생각도 못하던 미래가 펼쳐지는 거였지.

 

회사는 규모가 있어서 운영체 관한 체계가 잡혀있는 듯했어. 서류로 결재를 받는 시스템이 자리 잡혀 있더군. 이전까진 뭐 퇴사할 때 사직서 낼 때나 서류가 왔다 갔다 했지. 거의 없었는데 말이야. 거기에 회사 네트워크는 ○의 기업 네트워크에 연결돼서 감시를 받아야 했어.

"인터넷 사용을 통제하니까 검색이나 일반 사용은 몰라도 개인적인 일로 인터넷을 쓰다가 적발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해."

이런 건 압박이 되더군. 일하면서 웹툰도 보고 쇼핑도 할 수 있잖아? 근데 이게 다 막히니 답답함이 느껴져. 

그런데 이런 거와는 별개로 소프트웨어 개발 쪽엔 시스템이 거의 하나도 갖춰져 있질 않았어. 분석, 설계, 디자인 등의 문서화도 없었고, 심지어 소스코드도 전부 압축을 해서는 파일 서버에 폴더 안에 몽땅 집어넣어 두고 있더라고. 많이 본 적이 있을 거야. 압축파일이 버전 1, 버전 2, 이렇게 해서는 버전 10까지 마구 널려있어. 파일마다 작업한 건 별로 차이도 나지 않고 나중에 버전 1 파일은 가져다 쓸 일도 없는데 불안하니까 저장만 해 놓는 거야. 거기에 윤 부장, 제 차장 두 사람이 개발을 하는데 두 사람이 코딩을 하는 방법이 정말 달라. 뭐 함수 이름 짓는 것도 규칙이 없이 자기 방식대로 해 놓는 거지.

어느 정도 회사 시스템에 적응하고 개발팀의 서버 등을 다 뒤져보고 나서 개발에 들어가기 전에 윤 부장에게 질문을 했어.

"부장님, 회사에 네이밍룰 문서가 있을까요?"

"응? 그게 뭐야?"

이런! 다 설명을 해야 하는 군.

"여러 개발자가 같이 개발하면 다 본인 편한 대로 코딩을 하다 보면, 함수명이든 변수명이든 공통된 규칙이 없이 작성하게 되거든요. 나중에 통일이 안 되면 유지보수나 추가 개발 시 힘들어서 전부 규칙에 맞춰서 마치 한 사람이 개발한 것처럼 만드는 게 네이밍 룰입니다."

아주 복잡한 일도 아닌데 신경을 안 쓸 뿐인 거야. 윤 부장도 들어보니 괜찮은 거 같으니까,

"아, 그래? 우린 그렇게 안 했는데. 그럼, 장 과장이 한번 만들어서 공유해 줄래?"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문서 작업을 완료해서 개발팀에게 배포했고, 이걸 시작으로 개발 기준을 잡기 위한 문서 작업을 계속해 나갔지. 설계 문서는 널리고 널렸으니까...

그다음은 개발 소스 관리 서버였어. 소스를 압축해서 관리하는 건 너무 구시대적 방법이니까.

"부장님, 혹시 회사에 에스브이엔을 운영할 서버가 있을까요?"

"그건 뭐야?"

"소스파일 보관할 때 압축해서 관리하잖습니까? 그럼 뭐가 최신 버전인지 헷갈리고 관리도 힘들잖아요?"

"그렇지? 맨날 어느 압축파일이 최신인지 확인해야 하니까. 최신 날짜로 확인해도 그 파일이 아니더라고."

"소스 관리 서버를 두면 항상 최신소스로 관리가 되고 예전 소스도 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편합니다."

물론, 설명을 더 길게 해야 하겠지만 윤 부장에게는 이 정도로 설명을 마무리하는 게 좋을 거 같았어.

"그렇게 좋은 게 있어? 그럼 장 과장이 잡아볼래? 서버는 필요하면 구매할 테니까."

이게 필요하다고 살 수 있는 게 서버가 아니었어. 근데 여긴 진짜 나중에 필요한 서버를 결재를 올리니까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회사에 서버가 들어왔어. 이렇게 내가 하는 개발 시스템 체계 구축에 적극적인 회사는 처음이었지.

 

곧 나에게도 프로젝트가 떨어졌어. 무려 인도, 뉴델리, 지하철공사 신설 구축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지하철 고장분석시스템 개발이었어. 나중에 인도를 갈 거래! 한 번도 해외와 관련된 개발이 없었는데 얼마나 설레던지. 물론 긴장도 많이 됐어. 마냥 좋을 수만 없는 게 일이잖아. 윤 부장에게 전달받은 바론 우리 회사에서 알아서 만들래. 프로그래밍 언어든 데이터베이스든 말야. D아카데미에서 강의와 개발 모두를 MS개발에 맞춰서 해왔잖아? 그럼 MS 걸로 다 통일해야지. 최고의 조건이야. 

이때부터 분석, 설계, 디자인 개념 등 모든 걸 혼자서 시작했어. 윤 부장이 총괄을 하고 있었지만, 다른 업무와 개발이 잡혀 있으니 알아서 하란거지. 지하철에 들어가는 부품이 거의 1,700개인가 2천 개는 안되지만 그 부품을 가장 최상 레벨의 지하철부터 하위 레벨의 나사까지 주행거리에서 고장 난 이력을 집어넣어서 얼마나 자주 고장이 나는 부품이 어느 것이며, 왜 고장 나는지 확인해서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어. 듣기로는 지하철 프로젝트 전체 비용이 4,000억 원이 넘는 규모이고, 그중 고장분석 시스템이 4억 가까운 비용의 프로젝트라고 듣게 됐지. 매뉴얼과 설계까지 포함하면 약 10억 원 정도였었어. 이때까지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 중에 가장 규모가 컸던 거였지! 4억이라니. 참여 개발자는 나 혼잔데 4억!

역시 분석을 마치고 데이터베이스 관련 설계를 해가면서 나 혼자는 무리라는 판단이 섰어. 적어도 화면 디자인을 할 디자이너 한 명과 나보다 개발을 잘 하는 개발자 한 명은 더 필요하겠더라구. 제 차장이 디자인까지 할 수 있다는 걸 들었는데 우리 고등학교 선배님은 다른 개발에 참여하고 있어 힘들다더군.

"부장님, 인도 시스템 개발 인원이 필요합니다."

"응, 알아. 디자이너가 필요하지?"

"디자이너 외에도 개발자 한 명이 더 필요할 거 같습니다. 제가 사용하려는 게 엠에스의 더블유피에프라는 기술인데 이걸 저도 아직 초급수준이라 저보다 더 실력 있는 개발자가 같이 일했으면 좋겠는데요. 저도 좀 배우구요."

윤 부장은 화끈했어.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래? 그럼 내가 한 번 알아볼게."

이렇게 얘길 하면 곧바로 진행할 수 있는 회사, 너무 좋은 거 아냐? 이 WPF라는 게 MS사에서 새로 밀고 있는 기술이었는데, 이전의 앱 개발보다 더 깔끔하고 예쁘게 만들 수 있는 거라 도전해 보고 싶었는데 나 혼자는 무리잖아. 2주도 지나지 않아 윤 부장에게서 사람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며칠이 지나자 E에스아이 공장(!)으로 개발 경력이 무려 10년이 넘은 조 차장과 아직 경력이 별로 없는 여자 웹 디자이너 이 대리가 찾아왔어. 통성명을 끝내고 가벼운 얘기로 분위기를 푼 다음, 각자 역할을 전달해 줬지. 이 대리는 한 번도 WPF 쪽 개발을 해본 적이 없대. 뭐, 아직 초짜니까 당연한 거겠지. 내가 기본적인 건 가르쳐줄 수 있다고 했어. 여기서 직업훈련 강사의 힘을 사용하면 돼. 내가 개발경력 이제 5년 차에 접어드는 중급 개발자 정도였으니 10년을 넘게 개발한 조 차장이라는 사람은 얼마나 잘하겠어? 기대를 했지. 

"아, 장 과장님, 제가 더블유피에프란 걸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러는데요. 어떻게 하는지 기본을 좀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그럼 금방 따라 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잉? 머라구요? 윤 부장에게 요청했던 게 나보다 더 WPF를 잘하는 사람을 붙여달라고 했는데, 모른다뇨? 바로 윤 부장에게 달려갔지.

"사람을 구해본다고 했는데, 부산 경남 지방에서는 구하기 힘들다고 하네. 그래도 '씨'언어를 십 년 넘게 했다니까 금방 따라올 수 있지 않을까? 잘 가르쳐서 써봐."

부장님, 제가 직급이 더 낫은데요... 하기야 나보다 8살이나 많은 사람들도 D아카데미에서 가르쳤는데 까짓 거 가르치는 거야 어렵지 않지. 그래, 당장에 일손도 아쉽고 그 어렵다는 C언어를 10년 이상 해왔는데 거기에 비하면 난이도가 1/3 밖에 되지 않는 이걸 못할려고. 거기다 배우는 사람보다 늘 가르치는 사람이 더 실력이 좋아지는 거니까, 그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긴 힘들지마는 어쩌겠어. 열심히 가르쳐서 같이 일하자는 마음으로 일주일 가량을 조 차장과 이 대리를 둘 다 가르쳤어.

 

"부장님, 안 되겠습니다! 조 차장 가르치다가 제가 미쳐버리겠어요. 가르쳐주는데도 혼자서 제대로 못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대리는 이 주가 지나니까 혼자서 화면을 만들어내는 데, 조 차장은 안됩니다."

한 달이 되기 전에 내가 백기를 들었지. 도저히 조 차장을 더 가르쳤다가는 화병이 나서 죽겠더라구. 이거 그 어려운 C언어를 계속해왔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 프로그래밍 언어도 난이도로 상중하를 나눌 수 있는데 C언어가 상이라면, 내가 프로젝트에서 사용할 C#(씨샵)이라는 언어는 난이도가 중이거든. 더 쉬운 걸 알려주는데 못한다고? 3주 동안 개발을 제대로 못하니 프로젝트 기간도 날려버렸지, 강의도 맨날 같은 것만 하니까 답답하기만 하고 강의한다고 내 실력이 느는 것 같지도 않더라구. 

"흠... 그 정도인가? 도저히 안 되겠어?"

윤 부장이 다시 물어왔지만 난 단호했지.

"네, 그냥 저 혼자 하겠습니다. 이 대리가 화면을 만들어주면 제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다 만들어 낼 거니까 조 차장만 빼주세요."

결국, 인력 파견업체 대표가 나에게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하고 조 차장을 데려간 뒤 이 문제는 마무리되었어. 

 

결론적으로 화면 디자인을 제외하고 4억짜리 개발 프로젝트를 개발자 나 혼자서 설계, 기본틀 작성 및 전체 프로그램 개발을 다 한 거지. 9개월가량의 긴 여정이었지만, 이 대리의 깔끔한 디자인을 받아서 최신 기술을 끌어다 쓰고, 고장 분석에 필요한 여러 계산식을 프로그램에 녹여 넣어서 꽤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 냈어. 이 대리가 석 달을 일했는데 정말 1천만 원의 페이를 지급했다고 치고, 내 월급이 대충 2백5십만 원 정도였고, 이후 들어간 인도 출장 경비를 최대 3천만 원 정도라고 해서 1억 원 정도의 제반 비용이 들었다고 쳐봐. 결국 3억 정도의 차익이 생기는 프로젝트를 한 거지. 결국 내가 회사에 3억 원을 벌어다 준거야.

인도로 출장을 가서 김 이사에게 대차게 까이고, 느려터진 인도 인터넷에 시간을 질질 끌어서 겨우 설치하고, 3시간 반의 시차 때문에 한국에 지원받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2주를 보내고 일을 다 마치고 힘겹게 돌아오니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어. 그것보다 더 놀란 건 월급 통장에 돈이 월급 외에 더 들어와 있는 거야. 이건 대기업인 ○의 출장 규정을 따르는 데, 직원이 외국에 출장을 가면 항공료, 숙박비 등의 출장비를 제외하고 하루마다 체류비가 발생하는 거였어. 같이 갔던 이사는 10만 원이 넘게 나오는데 나는 7만 원. 그래도 2주 동안 머무르다 보니 거의 100만 원의 돈이 더 생긴 거였어. 해외 출장을 갔다 왔는데 돈을 더 번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 하긴 이 전엔 해외 출장이란 걸 가보질 못했으니 비교할 것도 없지.

인도를 갔다 오고 나서 많은 것이 달라졌어. 1년이 지났으니 새롭게 연봉 협상을 했는데 바로 차장으로 승진했고 연봉이 정말 급격하게 올라 4,000만 원으로 뛰어버렸어. 엄청난 임금 인상인거지. 스스로에게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이게 얼마나 차이냐면 한 달에 세전 금액이 250만 원이었다면 이젠 세금을 떼고 나서도 300만 원이 넘는다는 거지. 월급으로 300만 원 이상인지 이하인지가 얼마나 다르냐 이거야. 단지 아쉬운 건 분명 연말 인센티브가 있다고 했는데 거기에 별다른 언급 없이 한 해가 지나갔다는 거였지. 뭐, 매년 인센티브가 있겠어? 연봉이 그만큼 오르면 그게 인센티브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