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야, 학원이야? - D아카데미 전성기, 중

2025. 2. 21. 17:1320년간의 회사, 10번의 퇴사

개발자로 일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강의를 이어가며 모두 좋은 신입 개발자로 만들고자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그리 쉽진 않았어. 반년을 이어가며 금방 포기해 버린 일본어 전공자, 다른 학생과 충돌로 그만둔 학생 등 다섯 명의 훈련생이 중간에 그만두게 되었고, 그 때문에 스트레스가 커져가더군. 마지막 한 달 반 정도 팀별 프로그램 개발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수료 후 취업활동을 가지게 되지. 2008년 2월 중순이 되면서 첫 번째 담당을 했던 MS솔루션 개발자 과정이 끝났어. 결과는 27명 중 22명이 남아 있어서 수료율 81퍼센트, 22명 중 18명이 입사를 성공해서 취업률 82퍼센트. 

그 당시 직업훈련 강사의 평가를 하는 기준이 있었어. 과정 후 훈련생 수료율 80프로, 취업률 80프로가 최소 기준이야. 거기가 0점이고 수료율 100, 취업률 100이 10점 만점인 거지. 그러니 이 첫 과정에서 0점을 맞게 된거야. 이 초라한 성적에 실망이 적지 않았어. 김 팀장이 처음인데 80프로를 했으니 잘했다고 위로해 주었지만 쉽게 마음이 추스러지진 않았지.

그래도 곧 다음 과정을 맡아야 해서 빨리 정신을 차려야 했어. 이제 두 번째 MS솔루션 개발자 과정이 시작된 거야. 한 바퀴를 다 돌고 나서 다시 시작된 두 번째 강의들은 땅 짚고 헤엄치는 수준이 됐지만, 역시 가만히 놔두질 않네. 오후 네 시간 중에 전체는 아니라도 몇 주씩 다른 과정의 새로운 과목 강의를 시키더군. 나는 MS사 기술에 익숙한데 Java라는 다른 개발 쪽의 프로그래밍 언어의 강의까지 맡기는 거야. 와, 이거 또 집에 가서 밤늦게 까지 교안 준비해야 하는 건가 걱정을 엄청 했지. 그런데,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는데 교안 파일들이 떡하니 찾아지네? 거기다 내가 만들었던 교안도 찾아냈어. 아는 만큼 보인다고 왜 반년 전엔 못 찾았었는지 스스로가 한심할 지경이었지. 뭐, 대신 몸은 편하잖아? 

 

두 번째 과정에는 첫 번째 과정을 마치고 취업을 못한 네 명의 수료생들에게 취업을 독려하는 일까지 포함되어 있었어. 어떻게 취업활동을 하고 있는지 결과는 어떤지 이런 것과 강사가 찾아낸 취업처에 이력서를 넣어보라고 제시를 하는 등의 일도 업무의 연속이야. 네 명의 미취업 중인 수료생 중 한 명이 수진이었어. 그녀가 들어가서 일할 수 있을 만한 IT기업을 소개해줘서 면접까지 봐 합격을 했는데도 입사를 거부했고, 그 뒤로는 이력서도 제대로 안 넣고 있는 거 같았어.

"왜 이력서를 안 넣어요, 수진씨?"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어.

"이력서를 넣어요. 넣는 데... 연락이 안 오네요."

"그러니까, 첨에 합격한 곳에 들어갔으면 됐잖아요."

"그땐, 너무 겁이 나서..."

하긴 지나버린 걸 어쩌랴. 그리고, 지금 그녀가 이력서를 넣는다고 해도 고졸에 비전공자인 그녀를 넉넉하게 품어줄 그런 회사가 거의 없을 거란 걸 나 스스로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어. 비난할 수 있는 부분도 아냐. 세상은 객관적으로 돌아가니까, 거의...

"그래서 어떻게 할 거예요? 계속 프로그래밍 쪽으로 취업을 해볼 거예요?"

"... 정 안되면 제가 원래 하는 캐드 설계 쪽으로 다시 돌아갈까도 생각 중이에요."

"... 그래요. 알겠습니다."

방법이 없지, 뭐. 취업이 안되는데 다시 자기가 잘하는 CAD 쪽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결국 그녀는 6개월 이후까지 취업을 못해 내가 80프로 취업률이 공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해줬어.

 

중간쯤엔 D아카데미의 사내 학생관리 웹사이트를 개발하기도 했어. 개발하는 동안 월급의 50퍼센트를 더 지급하겠다는 학장의 의뢰로 기분 좋게 시작했지만 넉 달 동안 이어진 개발에 겨우 한 달만 언급한 보너스를 받았고 야근에 주말까지 나와 고생을 했지만 넉 달 뒤 완성된 학생관리 웹사이트를 보고도 학장은 더 이상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더군. 결국, 월급의 반이니 나는 100만 원, 개발에 투입된 사람이 총 네 명이니 최대로 잡아 600만 원도 들이지 않고 학장은 웹사이트 하나를 완성한 거였어.

그런 우여곡절도 겪으며 담당한 반의 강의와 다른 반의 강의, 학생관리 웹사이트 개발, 우전 수료생 취업 관리까지 해 가며 다시 반년을 마쳤어. 이번의 결과는 100퍼센트 수료, 100퍼센트 취업! 아무도 낙오되지 않았고 수료 후 3개월도 되기 전에 모든 수료한 훈련생이 전국 각지로 취업을 해 나갔어. 첫 과정에서 0점, 두 번째 과정에서 10점 만점... 극과 극의 결과였지. 두 번만에 그 타이틀을 딴 사람이 없다고 김 팀장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 프로그래밍 팀에 다섯 명밖에 강사가 없었지만 그 안에서도 박수를 받고 인정을 받는 게 기쁠 따름이었지. 

 

"아니 여길 왜 왔어요? 바로 취업해요."

세 번째 MS솔루션 개발자 과정 담임을 맡으면서 새로 온 훈련생을 한 명씩 상담하고 있었어. 이젠 왠지 문제를 일으킬 것 같은 학생, 공부는 해도 취업이 어려울 것 같은 학생, 특히 너무 소심한 성격도 포함돼. 그리고 중간에 그만두고 나갈 것 같은 학생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할 때였지. 내가 바로 취업하라고 한 학생은 MS사의 개발 자격증을 세 개나 취득한 상태였어. 당연히 이력서에 자격증에 기입하면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증이었어. 지금은 없어졌지.

그러니 뭐 하려고 과정에 들어와서 반년이나 더 공부가 필요하겠어? 바로 취업하면 된다고 생각했지. 그랬더니 답변이 돌아와.

"저... 사실은 코딩을 하나도 못합니다."

"그럼 엠에스 자격증은 어떻게 딴 거예요?"

"학교 연구실에서 자격증 따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요. 취업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땄습니다."

"그래도 컴퓨터 공학 전공이잖아요? 학교에서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울 텐데? 자격증은 어떻게 땄어요?"

"문제가 영어로 나오니까, 기출문제를 달달 외워서 시험을 쳤습니다."

참 나, 프로그래밍은 제대로 안 배우고 자격증만 땄구먼. 뭐, 생각해 보니 나도 대학교 졸업했을 때를 생각해 보니 겨우 정보처리기사 자격증 하나에 영어 자격증도 안 땄고, 혼자서 제대로 프로그램을 짜겠다는 자신감이 없었지. 그래서 대학원으로 도망치듯 들어간 거고, 거기다 대학원을 졸업했을 때도 실력이 그렇게 좋진 않았으니까... 맞아, 그러니 이 친구도 구제해 줘야지.

"잘 들어요. 자격증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난 정보처리기사 밖에 없어요. 엠에스 자격증은 하나도 없구요. 그래도 개발을 할 수 있죠. 엠에스 기술로 밥 벌어먹고 살았고... 좋습니다. 우리 같이 열심히 해서 코딩 실력을 키우고 취업합시다."

"감사합니다, 강사님!"

이 친구, 6개월 동안 열심히 공부했고 결국 IT개발 회사에 한 방에 입사했지. 스펙은 좋잖아?

 

세 번째 과정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사들의 연봉협상 시기가 다가왔어.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진 않았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어. 연봉협상? 이젠 내 생각대로 되도록 할 거야. 물론 A네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봉협상을 했지. B커뮤니케이션가 C안에서는 1년도 되기 전에 도망쳐 나왔으니 연봉협상 따위는 없었지.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두 번째 연봉 협상이란 걸 접하게 된 거야.

강사진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꽤 있으니 연봉 협상이 오래 걸리더군. 한 주가 시작하고 목요일이 되자 나를 불렀어. 부학장실로 가라더군. 호흡을 가다듬고 부학장실 앞으로 가 노크했어.

"들어와요."

커다란 소파와 테이블 정중앙 상석에 작은 안경을 돋보기처럼 내려쓴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키 작은 양복차림의 아저씨가 앉아서 옆의 소파에 앉으라고 권하더군. 키도 작고 덩치도 작지만 눈빛은 매서운 부학장이 어울리지 않는 미소로 나를 보며 바로 말을 시작해.

"장 선생, 올해 장 선생님 연봉은 이천 육백오십으로 정했습니다."

아, 이건 그냥 통보네. 얼마를 받았으면 좋겠냐는 말 따위도 없어... 하하. 150만 원 인상? 난 인정 못하지.

"부학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렇게는 안 될 거 같습니다."

그러자 의아한 눈빛으로 자신의 안경을 올려 쓰며 나를 봐.

"... 그럼 얼마를 원하시는 겁니까?"

"저는 삼천만 원은 받아야 된다고 보는데요."

"네?! 하하! 너무 많이 올리셨네."

부학장이 헛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손에 든 A4 용지를 뒤로 넘기는 거야. 잠시 몇 곳을 뚫어져라 내려보더니 말을 이어 갔어.

"장 선생님이 맡은 첫 과정에서 수료율과 취업률이 팔십 퍼센트를 겨우 넘겨서 평가가 좋지 않았어요. 그래도 두 번째 과정을 잘하셔서 저희가 백만 원 넘게 올려드린 겁니다."

그렇지. 못 주는 이유를 달아야지. 그럼 내가 거기에 반박을 할 거 아냐.

"맞습니다, 부학장님. 첫 번째 과정은 제가 팔십 퍼센트 정도밖에 못 받았죠. 이건 제가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처음부터 잘하면야 얼마나 좋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두 번째 어떻게 했었는지 아시죠? 제가 심혈을 기울여서 학생들 관리하고 취업까지 신경 써서 백 퍼센트 수료, 백 퍼센트 취업을 성공했습니다. 두 번 만에 그렇게 한 강사가 지금까지 있었는지 알고 싶네요."

이 부분은 미리 김 팀장에게 물어봤지. 입사하고 과정을 맡아서 두 번만에 올 100을 성공한 사람이 있냐고 말야. 없다더군. 그럼 내가 우월한 거지.

"앞으론 첫 번째 과정처럼 될 일은 없을 거구요. 그리고 백 퍼센트를 무조건 채우리라는 장담은 못 드리지만 앞으로도 과정의 결과는 무척 좋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요구하는 만큼 받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부학장실이 커다란 웃음으로 가득 찼어. 부학장이 즐겁게 웃는 거야. 잠시 후 웃음을 멈추더니 내 의견에 대답을 하더군.

"우리 학교에서 장 선생님처럼 자기 의견을 정확히 털어놓고 자신감 있게 말하는 선생님들이 왜 없을까요? 장 선생님이 그렇게 얘기해 주니 오히려 기분이 너무 뿌듯한데요?"

나중에 알아보니 대부분 강사들이 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거나 교사 자격증이 있는 교사 출신의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었고, 나처럼 실무 경력으로 온 사람이 드물다고 해. 그러니 학교에서 지정한 연봉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넘어가는 경우가 일반적이래. 그런데 오히려 내 노력의 결과와 의견을 정확히 얘기를 한 나에 대해서 좋게 평가를 한 거지.

"아... 장 선생처럼 적극적으로 해주시는 분이 많았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왜, '그런데' 야? 그냥 주면 되잖아. 

"음... 그럼, 이천 구백으로 하죠. 어떻습니까? 이후 계속 좋은 결과를 보여주시면 다시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

2,900? 100만 원 12개월로 나눠봤자 8만 4,000원 밖에 안 돼. 까짓 거 뭐. '네'라고 대답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지. 근데 올 100인데 어떤 더 좋은 결과를 바라는 건가 싶네.

그리고 D아카데미에서 이렇게 급격하게 연봉을 올린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