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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의 회사, 10번의 퇴사

학교야, 학원이야? - D아카데미 전성기, 상

by 유고 담요 2025. 2. 19.

직업학교, D아카데미라... 말이 좋아 학교지 사실은 학교가 아냐. 일단 정말로 고등학교 졸업생 들 취업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직업학교란 이름의 학원이야. 아직도 여전히 많은 지역에 노동부 지원을 받으면서 운영되는 곳이 엄청 많지.

이걸 직업능력개발 훈련이라고 부르잖아. 그 이름이 뭔가 있어 보이긴 하지, 결국은 나랏돈으로 훈련을 시키고 그 결과로 취업을 하라는 거야. 단순한 교육의 목적이 아닌 거지.

D아카데미는 직원 수가 20명이 넘었고, 훈련생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와 참여하는 사람들이 한 반에 30여 명이 있었지. 거기다 4층짜리 넓은 건물을 혼자서 사용하고 있었어. 층층마다 강의실이 두 개, 세 개씩 해서 10개가 넘는 강의실이 있었는 데 어림잡아도 강의실을 전부 운영하면 학생들 수만 300명은 되는 엄청난 규모의 학원이었지. 뭐, 훈련생이 직원은 아니니까 직원 수가 30명 안 되는 중소기업이라고 보면 될 거 같아.

훈련생은 각양각색의 배경을 가진 성인들이었어. 사업하다 망한 사람, 아직 취업을 한 번도 못해본 대학 졸업생, 결혼을 일찍 했다 다시 일을 시작하려는 주부 기타 등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집합소였어. 그래도 그중에 가장 많은 비중이 취업을 하려니 겁이 나서 기술을 배우겠다고 온 대학 졸업생과 아직 4학년을 마치지 않은 대학생이 대부분이었지.
 
여길 적응하는 것도 쉽진 않았어. 대학교에서 시간 강의를 해본 경험이 있긴 하지만 직업훈련 강의는 정말 달랐지.
시강, 시범강의를 D아카데미의 다른 강사들, 학원 직원들 앞에서 해야 하는 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 이 사람들이 나를 평가한다고 생각하니 더 떨리지. 대학교 정보처리 개론 수업을 하던 그 기억을 되살려 10분 정도 되는 강의를 했었어. 그런 다음 각자 자신의 의견을 적은 결과지를 나에게 모아 주더군. 20개 가까운 결과지를 천천히 살펴보았어. 그 결과는...
'목소리가 단조로워 너무 졸리다.'
가, 공통된 의견이야. 목소리가 나쁘지는 않지만 높낮이가 없는 한 톤으로 수업을 한다는 거지. 이걸 고치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어. 이걸 어떻게 고치라는 거야?

C안을 다니면서 사내 메신저 등을 만들면서 쌓은 경력으로 MS사 기술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주는 강사로 배정을 받게 됐지. 그때 나와 같은 분야 강의를 하던 두 살 어린 성 강사가 있었는데, 시범강의 다음 날 교무실에서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어. 
"장 쌤, 나중에 시간 되면 제 수업 한 번 봐 보실래요?"
먼저 나에게 제의를 해준 게 너무나도 고마웠어. 그래서 곧바로 따라 올라갔더랬어.
 
정말 성 강사의 강의는 충격적이더라. 청강하는 내가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목소리를 키웠다 줄였다, 온몸으로 액션을 취하고, 칠판을 두드리며 마치 대치동 유명 수학강사처럼 수업을 이끌어 나가는 거야. 내가 다니던 입시 학원에선 그런 강사들이 없었는데 말이지.
"장 쌤도 학생들이 집중하고 수업을 들을 수 있는 본인 만의 강의 스킬을 찾아야 해요."
강의가 끝나고 난 뒤 나에게 진지하게 조언을 해줬어. 하긴 배울 내용이야 똑같잖아? 컴퓨터 프로그래밍. 그럼 그걸 재미있게 가르쳐야겠지. 곧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발표 기술, 스피킹 기술에 대한 책을 사서 혼자 연습을 하기 시작했어.

곧바로 강의 일정이 잡혔는 데 그건 내가 강사로 들어오면서 더 이상 강의를 하지 않고 팀 관리로 자리를 옮긴 김 팀장을 대신해 그가 맡고 있던 MS 개발자 과정 반에 들어가는 거였어. 마지막 프로젝트 기간이라 그냥 가서 앉아있다가 훈련생들이 물어오는 것들에 대해서 답만 해주면 된다고 하더군. 이건 스피킹 기술 연습한 건 써먹을 필요가 없었지. 김 팀장이 그 한 달 정도 기간 동안 내가 가르칠 과목의 교안을 만들라고 얘길 해줬어. 교안?
 
교안, 이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야. 학생을 가르칠 내용을 파워포인트 안에 깔끔하게 정리해서 넣어서 쉽고 보고 이해하거나 따라 할 수 있게 작성을 해야 하는데 이게 혼자 공부하는 게 낫지, 이걸 만드는 데는 몇 십배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이해가 필요한 거였어. 조금 간단한 윈도우 운영체제부터 시작해서, 데이터베이스 같은 개발자가 반드시 배워야 하는 과목까지 총 10과목 중 5과목이 내 담당이 될 거라고 했고, 내가 그 반의 담임 강사를 맡게 될 거라고 하는 거야. 8월 중순에 과정이 시작되는 거였지. MS솔루션 개발자 과정이라는 이름으로 훈련생을 모집 중이라고 들었어. 한 달 정도밖에 시간이 없는 거야. 그동안 교안을 미친 듯이 찍어내야 했어.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도 교안 작업을 계속했는 데도 마지막 두 과목에 대한 교안은 시작도 못하고 과정이 시작하게 되었어.
 
8월 13일이 되자 내 과정이 시작했지. 강의 시작 1교시 첫 시간엔 김 팀장이 들어와 개발자 과정에 대한 소개와 전체 일정 등을 설명하는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가졌어. 거의 질문도 없이 조용히 끝나는 거였고, 10분의 휴식 후 드디어 나의 강의가 시작됐지.
'여러분, 반갑습니다. 다들 제 얼굴 아시죠? 여러분들의 개인 면담 때 인사를 나눴었던 장 연성입니다. MS솔루션 개발자 과정의 담당강사로써 육 개월 동안 여러분의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반년동안 열심히 해봅시다!'
가, 내가 전날 밤부터 자기소개멘트로 준비한 거였어. 근데 이미 마우스로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띄우려는 손이 파르르 떨리는 걸 느꼈어.

한 사람씩 면담을 할 땐 전혀 떨림이 없었는데 27명의 눈동자가 모두 나를 향하는 걸 의식하자 어떻게 대처할 수가 없었어. 대학교 시간강의는 자리에 앉아서 시작하면 됐었는데 이건 중앙에 바로 서서 시작을 해야잖아. 다행인 건 김 팀장이나 다른 학원 관계자들이 보고 있진 않단 거였지.

"반갑습니다... 장 연성입니다."
이미 계획했던 멘트와는 이미 틀어져 버리고 말았어. 
"여기 MS솔루션 개발자 과정의 담임을 맡았습니다."
아... 쪽팔린다. 어떡하지, 해도 이미 되돌릴 수 없어. 어떻게든 강의를 빨리 시작해야 했지. 그래도 할 말은 전해야지.
"앞으로 오전 네 시간, 이 주 동안 윈도우 서버 운영체제에 대해서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다행인 건 그 파워포인트의 발표자 노트에 메모를 적어놓았기 때문에 강의 내용 전달에는 문제가 없었어.
 
한 여름이라 에어컨도 매우 빵빵하게 틀고 있었는 데도 와이셔츠 안이 축축이 젖어가. 다행히 넥타이를 매지는 않았지만 한 번씩 생기는 실수에 당황하며 말을 버벅대기 시작하면 또 긴장을 해 더 말을 더듬게 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지. 그래도 다행인 건 윈도우 서버 설치부터 시작을 하니 학생들이 각자 자신이 컴퓨터에 운영체제를 설치하는 것 부터 시작되어 개인적으로 봐주면 되다 보니 모두 앞에서 발표하던 긴장이 조금이나마 풀리기 시작했어. 

발표 수업은 버벅대도 실습은 자신 있었어. 대학교 시절 컴퓨터 조립 판매를 하면서 용돈벌이를 하다 보니 컴퓨터 하드웨어나 윈도우 설치 같은 건 식은 죽 먹기였거든. 처음은 쉬웠지. 서버라고 해도 기본 윈도우와 설치 방법이 거의 다르진 않았고 이미 여러 번 연습했었으니까 말야.
그럼 뭐 해? 각 내용 전달은 이전에 성 강사에게 배운 것과 같이 학생들이 졸지 않게 큰 목소리로 떠들다 보니 세 시간도 채 지나기 전에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했지. 그러고 나서 다음 장으로 내용이 넘어가니 실습보단 또 이론적인 설명이 많아지네? 첫날 마지막 4교시 내내 강의를 마치고 나자 내 성대는 장렬히 전사해 버렸어.
 
이렇게라도 하루가 그냥 끝나면 정말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다음 날엔 또 다른 문제가 터지는 거지. 강의 스킬이 부족하고 생각보다 내 지식이 아직도 부족하다는 걸 깨닫게 되는 일이 허다하게 발생했어. 
"강사님, 저 터미널 서비스가 제대로 안 되는데요? 시킨 대로 했는데..."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해 가서 확인해 보니 나 역시도 해결 방법이 안 나오는 거야. 다시 당황하게 되는 거지. 진땀을 흘리며 인터넷을 찾아보면서 문제를 해결하면 몇 십 분이 흘러가 버려 난감해졌지. 그 학생 컴퓨터를 봐주느라 강의가 진행이 안되니 다른 학생들은 멍하니 시간을 보내게 되니까.
그래서 며칠 만에 생각해 낸 방법이 잠시 보다가 금방 문제를 못 풀겠다고 판단이 서면,
"강의를 준비하면서 테스트했던 결과와 다르네요. 제대로 확인한 후 내일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하고 우선 위기를 모면했어.

그럼 뭐 해. 그리고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컴퓨터를 켜고 쉴 틈도 없이 해결방법을 인터넷에서 찾기 시작하는 거야. 오전 네 시간만 강의를 하니 오후에 하면 안 되냐고? 어림도 없는 소리. 오후 네 시간은 학생들 출결 관리, 결석자에게 전화 걸어 알아보기, 상담일지 작성... 뭐 밀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냐. 수업 중에 생긴 문제를 해결할 만한 여유가 안 생기더라고.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요령과 스피드가 생겨서 다 오후 업무 시간 동안 처리할 수 있었지만 처음엔 그게 안 돼서 무지 힘들었지.

"아들, 목소리가 이상한데?"
"아... 괜찮아요. 말을 많이 하다 보니 그래요."
걸걸해진 목소리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면 걱정스럽게 물어와 더 마음이 무거워졌어. 진통제를 먹으면서 수업을 한다라고 말을 할 순 없으니까 말이야.

집에 돌아와도 밤 12시를 넘기기가 일쑤였으니 피로도 쌓이고 있었어. 개발을 4년 동안 해오며 나름 프로그램 개발 실력이 어느 정도 늘었다고 자부했는데, 단순한 개발과 지식 전달이 그렇게나 차이가 날 꺼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했지. 개발이야 그냥 어떻게든 하면 되니까 설명이랄 게 필요 없는데, 그냥 '이렇게 하면 돼요'가 아니라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풀어내야 하니까 강사 스스로가 정말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어.

다행인 건 두 달이 지나가자 적응이 됐는지 목소리가 다시 돌아왔어. 목이 따끔거리며 아프던 것도 조용히 사라지고 이제 말하는 게 어렵지도 않고, 강의를 하는 것도 여유가 생겨 천천히 진행하게 되었지.
 
D아카데미에선 꽤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가게 되는 몇몇 사람들을 만나게 됐어. 먼저 선 팀장은 다섯 살 연상의 여자 상담팀 팀장이었는데 2층 교무실에 생활하던 강사진들과 많이 부딪힐 일이 없지만 한 번씩 1층 상담센터로 내려가면 반갑게 맞아주던 예쁜 누나 같은 사람이었어. 갈 때마다 반갑게 인사해 주고 1차 상담 끝난 학생들을 강사에게 전해주는 역할이다 보니, 처음 학원에 등록하러 온 학생들의 상담이 끝난 뒤 분야별 강사에게 상담카드를 전달해주는 일이 그녀의 일이야. 그 나머지 일은 잘 몰랐지. 그 당시엔... 그런데 그런 선 팀장과의 인연이 10년이 넘게 이어져 나중에 다시 만나게 돼.

김 팀장 역시 그런 의미로는 나중에도 계속 연락하게 되는 인물이지. 또, D아카데미에서 프로그래밍 분야에 강의를 맡았던 강사진 들은 나중에도 다시 연락을 하게 돼.

것보다 더 중요한 인연을 버벅대며 시작했던 2007년, MS솔루션 개발자 과정에서 알게 되지. 수진은 두 살 어린 훈련새이었는데, 대부분 대전 근처에 사람들이 훈련생으로 들어왔었는데 그녀는 집이 부산이라서 더 눈에 뜨였어. 개인 상담 때부터 확인했었던 것이 전라도에서 태어나 중학생이 되기 전 부산으로 가족이 이사 온 뒤, 부산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더군. 그리고 고등학생 시절 사고사로 아버지를 잃고 집안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했더라구.

그 후, 부산의 직업학교에서 CAD를 배워, 대구로 가 제품 설계 디자인을 일을 몇 년간 해왔는데, 새벽까지 일을 해야 겨우 200만 원을 넘게 받을 수 있는 박봉에, 고된 업무에 지쳐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린 게 컴퓨터 프로그래밍이었다고 하더라. 어차피 대구에서 별로 멀지 않은 대전이라 눈여겨보던 직업훈련을 찾다가 D아카데미까지 오게 됐다고 했어. 뭐, 나보다 더 파란만장한 인생이어도 고향을 떠나 부산, 대전까지 올라온 모습이 나랑 비슷해 동질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그냥 그러한 상황에만 눈이 들어온 건 아니었어. 사실, 키도 170cm 에는 못 미치지만 꽤 커 보였고, 거기에 슬림한 몸매에 슬픔이 감도는 얼굴이지만 꽤 매력적인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어. 오뚝 선 코가 눈에 띄었고 완전 미인이라고 할 순 없어도 긴 생머리 밖으로 귀가 살짝 드러날 때도 '이상하다, 어디서 봤지?'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나중에 다른 학생들과 친해지고 난 회식 자리에서 다들 수진을 '엘프녀'라고 부르던 걸 들었어. 그러고 보니 영화나 만화에서 보던 엘프처럼 느껴지던 게 그 이상한 느낌이었던 거지. 그래서 그런지 단순히 어려운 가정 형편만이 아니라 뭔가 내가 계속 그녀를 신경 쓰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 일본어를 전공하다 온 친구에게 외국어와 컴퓨터 언어는 비슷하니 어렵지 않을 거라며 열심히 응원하고 도와줬지만 금세 포기하고 도망간 학생도 있었지. 그런 걸 중도 탈락이라고 불렀거든? 중도 탈락을 하면 취업훈련 과정에 큰 영향을 끼치게 돼. 이게 나중에 강사의 평가로 이어져. 그러니 중간에 그만두지 않도록 하는 일도 신경 써야 했지.

또, 그 당시 내가 서른한 살이었는데 마흔이 된 두 명의 훈련생이 들어오는 거야. 현실적으로 마흔을 넘은 사람을 신입 개발자로 채용하는 회사가 아예 없었어. 그래서 취업이 힘드니 다른 길을 알아보라고 정중히 얘길 했는데도 '무조건 취업을 할 테니,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해 달라.'라고 해서 참여시켜 줬더니 수료 후 결국 취업 못하고 끝나버린 두 사람들. 맨날 늦잠을 자 제대로 취업이나 할까 걱정하던 지각생은 오히려 취업은 한 번에 성공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20여 명의 훈련생들을 모아 놓은 집합소는 정말 혼돈의 카오스, 아수라장 직전이지. 그래도 그렇게 안 보였고, 그렇게 난장판이 안 되도록 계속 관리를 하는 게 강사의 몫이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