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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의 회사, 10번의 퇴사

최강 쓰레기 좋소 - 월급 빚쟁이! C안, 하

by 유고 담요 2025. 2. 13.

이렇게 끝나야 하잖아. 그냥 조용히... 회사를 퇴사했으면 거기서 끝이지. 물론, 나도 잘한 건 아니야. 근데 와... 나도 못 참겠더라구. 일은 이렇게 벌어졌어.
D아카데미를 다닌 지 반 년이 좀 넘게 지났어. 6개월 한 과정을 마치고 학생들 취업에 신경을 쓸 무렵이라 내가 취업은 하지 않아도 X코리아나 이런 취업 사이트에서 프로그래밍 개발자 모집 공고를 찾아보고 있을 때 우연히 노동부 구직 사이트를 뒤져보게 됐는데, 거기서 C안의 이름을 보게 된 거야. X코리아 같은 곳에는 올리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면, 회사의 재정 상태를 공개해야 하는데 지금 직원 월급도 못 주는데 할 수 있겠어? 
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C안의 신입 개발자 채용 공고를 보고 곧바로 노동부 구직 사이트 게시판에 글을 올렸어. 어떻게 직원 급여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회사의 채용 공고를 올려줄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어. 그런 회사는 국가에서 운영하 곳에서 제지를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이지. 거기 정보 입력창에 이름, 전화번호 등을 넣더라고. 다 넣었지. 그랬더니 바로 내 게시글 밑에 답글이 오더라. 조치를 취하겠다고... 그리고 곧 C안의 채용 공고는 없어졌어. 더 이상 검색이 안되더군. 그래서 생각했지. 아, 역시 나라에서 운영하는 곳은 바로 반영이 되는구나! 하고 말야. 통쾌했어.
그리고 며칠 뒤 핸드폰으로 전화가 울리더군. 강의 중이 아니었고 전화번호에 이름도 뜨질 않아서 무심결에 전화를 받았지.
"장 과장! 나 배 부장이오!!"
C안의 배 부장이었어. 배 부장이 폰 밖으로도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쩌렁한 목소리로 공격을 해 오더군. 화가 치민 목소리였어. 뭐, 그래도 내가 B커뮤니케이션에서 연 사장에게 휘갈긴 사자후에 비견할 것도 아니지. 누구는 뭐 소리 못지르나?
"아, 네 배 부장님."
잘 지내셨냐는 안부를 전할 새도 없이 곧바로 본론으로 치고 들어와.
"당신이 노동부에 우리 회사를 신고한거요?"
처음엔 왜 전화를 했지? 아주 짧은 찰나에 생각이 곧바로 아, 올게 왔구나.로 바뀌었어. 내가 먼저 사고를 친 거지... 헌데, 노동부 신고는 익명 아냐? 어떻게 내가 했다는 걸 바로 알고 전화를 한 거지? 갑자기 C안의 공고를 내리고 게시판에 답글은 단 직원이 살짝 미워지더군. 익명이었으면 그냥 조용히 넘어갈 일을 이렇게 만들다니.
하지만 뭐 어쩌겠어. 이미 벌어진 일이고, 뭐 내가 거짓말한 건 아니니까...
"네, 제가 그랬습니다."
"지금 장난쳐요?!!!"
정말 스피커가 부서질 정도로 배 부장의 고함소리가 핸드폰 스피커 밖으로 쏟아져 나왔어. 하지만 쫄거나 주눅이 들진 않았어. 
"장난이 아니라, 사실이잖습니까? 저도 얼마 안 되지만 월급 밀렸고, 다른 분들은 몇 천만 원씩 밀려있던데, 그런 곳에서 사람을 또 뽑으면 월급은 어떻게 주시게요?"
"그걸 당신이 왜 판단해!!"
정말 자기만의 세계에서 사는 건가? 월급도 못 주면서 새 개발자를 뽑겠다고? 열정페이로 일하라는 거야, 뭐야. 자기는 안 밀렸겠지. 조 사장의 측근이니까...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싶은 찰나 전화기로 배 부장이 이야기를 이었어.
"사과하고, 장 과장이 해결하세요."
사과? 무슨 사과? 그리고 내가 해결하라니 어떻게? 노동부에 다시 연락해서 제가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거기 월급 잘 줘요, 그러니 채용공고 다시 올려주세요, 아나?? 하!
"무슨 사과요?"
"장 과장, 당신이 잘못했잖아? 사장님께 사과를 하고 어떻게든 해결해서 마무리 지으라고!"
"... 제가 잘못한 게 있습니까? 회사 사정을 사실대로 얘기한 거고, 내려간 공고를 어떻게 다시 해결합니까?"
사실 어떻게 치면 조용히 넘어갈 일을 사고를 친 건 맞으니까 사과를 한다면 내가 하긴 해야겠기도 하지. 근데 해결은 어떻게 하지?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마구 피어나고 있었지만, 진짜 안 하고 싶었어. 그리곤, 다시 물었지.
"이게 제가 사과할 일인가요?"
"뭐? 지금 잘했다고 대드는 거야?"

잠시 침묵이 핸드폰과 내 귀 사이에서 머무르는 가 싶더니 내 머리에 깊이 박힌 개소리, '우린 프로잖아' 다음으로 내 인생에 깊이 남은 개소리 명대사를 배 부장이 뱉어냈어.
"좋아, 내가 장 과장 당신, 이 업계에서 발 못 붙이게 해 주겠어!"
그리곤 대뜸 전화를 끊어버렸어. 내가 그 말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본 적은 있는데 그 말을 직접 들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거지. 저 인간은 자기가 그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판단하는 건가 싶었어. 뭐 3 스타 장군이라던가, 무슨 국회의원이라던가, 기업 총수라던가 하면 모르겠는데 겨우 20명도 안 되는 쪼그만 거기다 지금 월급도 못 줘서 휘청대는 회사 일개 부장 나부랭이가 이 업계를 좌지우지하는 사람인가? 거기다 개발자도 아닌 사람이? 내가 겨우 나이 서른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사람의 위치가 그 정도가 되는지 정확히는 몰라도 일명 '끕'이 되는 사람이 아니란 건 이미 알고 있었어. 조 사장이 그런 말을 해도 콧방귀를 뀌었을 텐데, 배 부장의 그 말에 코로 방귀가 아니라 똥이라도 쌀 지경이었지.
와, 이게 몇 분의 시간이 지나니까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어. 화가 치밀어 오른 거야. 좀 늦게 반응이 온 거지. 그리고, 억울했어. 내가 저딴 소리를 들어야 할 이유가 없잖아? 짜증, 분노, 수치 뭐 여러 가지 감정이 마구 휘몰아쳤어.
아, 무슨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려고 해도 하다못해 뉴스에 제보를 하려고 해도 녹음을 땄어야 하는 데 너무 급하게 전화가 오고 생각을 못했다 보니 깜빡한 거야. 아니, 늦었더라도 다시 녹음을 하자. 증거를 남기자 싶었지. 분노에 떨리는 몸을 추스르고 방해받을 일 없는 상담실에 들어가 앉았어. 핸드폰을 열고 녹음을 시작하고 최근 통화목록을 다시 눌렀지. 한참 만에 전화를 받더라.
"... 여보세요?"
"배 주완 씨."
나는 그 사람을 배 부장이라고 부르지 않고, 완전한 그 이름 석 자를 그대로 불렀어. 나보다 네다섯 살 많아도 지금 그걸 따질 건 아니잖아? 
"장 과장..."
앞선 통화에서는 기세등등하고 화를 미친 듯이 내던 배 부장이 이번엔 갑자기 조신하게 대답을 하더군. 그래, 시작해 보자. 존댓말도 필요 없지.
"당신, 조금 전에 뭐라 그랬어?"
"..."
대꾸가 없네. 그리고 계속 침묵. 그 침묵이 너무 길어지니까 오히려 짜증이 나더군.
"다시 말해봐. 조금 전에 나한테 뭐라고 그랬는지 다시 얘기해 봐요!"
여전히 배 부장은 대꾸가 없어. 녹음하고 있단 걸 눈치챈 건가, 아니면 내부에서 조 사장과 얘기해 봐도 뾰족한 대응 방안이 없단 걸 깨달은 건지 뭔지 계속 침묵 중이지만 그게 나를 진정 못하게 만들어 가는 거였어. 그러자 꾹 참고 있던 경상도 사투리 억양까지 튀어나오기 시작했지.
"뭔데! 아까 했던 말 그대로 내한테 해보라고! 뭐 어쩐다고 했어!!"
그제야 배 부장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어.
"장 과장, 아까는 제가 실언했습니다."
실언 같은 소리 하고 자빠지셨네. 
"배 주완 씨, 아깐 말 잘하대? 해 보라니까?? 이 업계에서 뭐라고?! 다시 해봐!"
'이 업계에서 발 못 붙이게 해 주겠다고 말했습니다'라고 대답을 하길 바랐지만 배 부장은 안 넘어오더군. 그럼 내가 말을 하고 '네'라는 대답을 하도록 유도를 해야지.
"분명 당신 입으로 이 업계에서 발을 못 붙이게 하겠다고 했어, 안 했어?"
그런데 대답은 안 하고,
"그때는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미안합니다."
"네, 아니오라고 대답해!"
"미안합니다..."
와, 이거 그냥 사과만 하는 데도 화가 가라앉질 않네? 근데 막상 녹음하고 싶은 얘길 못 하니까 힘이 빠지더니 금방 화도 풀려버렸어.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해 버렸지.
"아, 알았슴다. 배 주완 씨 당신 마음대로 해봐요. 제발 빨리 이 업계에서 내가 발 못 붙이게 해주쇼. 그래야 빨리 길거리 나가서 풀빵 장사라도 할 테니까..."
"장 과장, 아깐 정말 미."

미안이라는 소리도 듣기 싫어서 그 인간이 했던 대로 바로 종료 버튼을 눌러버렸지. 그렇게라도 해야 속이 후련할 거 같았어.

 

아니, 진짜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말을 하는 게 쪽팔리지도 않나? 그 웃긴 집단은 6월에 퇴사한 나를 8월까지 일한 것처럼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해놨어. 언제까지 일을 하고 마쳤는지도 모르는 거야. 거기다 좀 지나고 나서 국민연금 공단을 가서 확인해 보니 이 새끼들, 국민연금도 제대로 안 냈어. 하긴 급여도 못 내는 것들이 국민연금은 제대로 낼까.

B커뮤니케이션은 사장이 무능해서 그렇지 인간적으로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 하필이면 그다음으로 간 C안은 사장부터 쓰레기인 거야. 그래서 그런 곳을 좋소라고 하잖아. 결국 C안은 2009년 초에 폐업을 하고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75만 원 미납 급여부터 시작된 이벤트로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좋소 C안은 내 머리에 각인돼 버렸지.

 

C안을 퇴사하며 배운 건 이거야.

월급을 안 준다면 퇴사를 하는 건 당연한데, 다른 사람들의 미지급된 급여도 확인을 해봐야 한단 거지. 얼마나 회사가 썩어있는지 말이지. 그리고, 고용노동부 웹사이트도 확인해서 국민연금을 냈는지 안 냈는지도 꼭 확인하라는 거지. 안 냈으면? 고발해.

내가 받아야 할 돈은 엄청 소중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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