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22

우리는 프로잖아 - A네트 잔혹사, 하 다시 이 차장 앞에 앉은 상태로 정신은 돌아와 있었어. 나 혼자, 석 달짜리 블로그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를 두 달 반 동안 묵은 지 되도록 삭혀뒀다가 나에게 던지면서 이 주만에 만들어내라는 저의가 뭐냐 이거야. 마지막 발악을 했지."이걸 제가 왜 해야 합니까?"나의 이 질문에 내가 20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인생 최고의 명언을 남기셨어."우린 프로잖아. 프로면 프로답게 마무릴 지어야지."이 사람, 프로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건가? Professional. 전문적이라는 형용사 또는, 전문직 종사자라는 명사. 근데 그걸 여기다 갖다 쓴다고?어느 프로가 석 달 전에 받은 프로젝트를 데이터베이스 설계 다이어그램도 그리지 않고, 화면 설계도 없이 아니 하루라도 더 많은 15일 동안 하라고 했으면 감사했을 거.. 2025. 1. 29.
우리는 프로잖아 - A네트 잔혹사, 중 한 해 전인 2004년은 이상한 해였지. 부산엔 영향이 없었지만 3월에 폭설이 와서 난리가 나더니 7월부턴 장난 아니게 더운 거야. 폭설은 피해도 폭염은 못 피해 갔어. 그런 해에 첫 회사에 들어간 거야. 실력이 없으니 취업이 겁이 나 대학원으로 도망쳤고, 2년을 보냈는데 많이 들어보던 교수님의 추천 따윈 우리 전공은 없는 거야. 그러니 본인 힘으로 직장을 찾아야 했지. 열 군데 정도 서류전형에 떨어지니 자존감을 땅바닥에 붙어있었던 때에, 우연찮게 웹사이트 개발 회사가 눈에 띄었고 이력서를 넣고 처음으로 면접이 잡힌 거지. 그러니 절실하지 않겠어? 그래서 덥석 물어버린 곳이 부산역 근처에 있던 A네트였어. 첫 연봉은 부끄럽지만 1,500만 원이었어. 당시 대기업 초임 연봉이 2,600 정도였으니 꽤 많이.. 2025. 1. 27.
우리는 프로잖아 - A네트 잔혹사, 상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내가 다녔던 10군데의 회사에 대한 이야기야. 그곳들이 어땠는지는 읽어보고 개인적으로 판단해 주길 바래. 노무현 대통령이 3년 차 임기를 맡았던 때였지, 난 스물아홉이었고. 작년에 최초에 올림픽이 열렸던 아테네에서 108년 만에 다시 올림픽이 열려서 시끌시끌했지만, 내년이나 되어야 독일 월드컵이 치러지니 아무것도 없고 썰렁하기만 한 해의 7월이었어. 여름이긴 해도 이상하게 덥지 않아. 근데 그거 알아? 넥타이를 매면 체온이 많이 올라가는 거. 체감온도가 2도나 올라간다는데 이 이상한 IT회사인 A네트는 개발자도 양복에 넥타이를 매게 한단 말이지. 안 그래도 머리를 써서 머리에 열이 오르는데 넥타이까지 하게 해?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넥타이를 하고 일하는 개발자는 아무도 없었어... 2025. 1. 26.
위기를 기회로, 코로나 호캉스 만약 코로나 시국이었으면 정말 욕을 쳐(!)들어먹을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뭐 그냥 독감 같은 거니까 얘기를 해보죠. 그렇게 하고 보니 벌써 햇수로 5년이 넘어가는 옛날일이네요. 멀리까진 못가더라도 마음먹으면 그냥 근처 동남아시아로 해외여행을 가는 취미가 생겼습니다. 이런 겁니다. "우리 오늘 보라카이 갈래?""... 어, 가자." 이러면 그날 30분만에 여행가방을 챙기고 공항으로 갑니다. 그리곤 그냥 밤 비행기로 보라카이로 떠나죠. 그런 취미가 딱 2년 밖에 안됐습니다. 일을 하고 있으니 금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해외로 나가는 거죠. 하긴 보라카이 때는 퇴사를 하고 놀고 있을 때라 가능하긴 했습니다.당일로 해외 여행을 꽤나 재미있어요. 근데 2020년이 되면서 코로나가 터지니 모든 나라가 전부 .. 2025. 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