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내가 다녔던 10군데의 회사에 대한 이야기야. 그곳들이 어땠는지는 읽어보고 개인적으로 판단해 주길 바래.
노무현 대통령이 3년 차 임기를 맡았던 때였지, 난 스물아홉이었고. 작년에 최초에 올림픽이 열렸던 아테네에서 108년 만에 다시 올림픽이 열려서 시끌시끌했지만, 내년이나 되어야 독일 월드컵이 치러지니 아무것도 없고 썰렁하기만 한 해의 7월이었어. 여름이긴 해도 이상하게 덥지 않아. 근데 그거 알아? 넥타이를 매면 체온이 많이 올라가는 거. 체감온도가 2도나 올라간다는데 이 이상한 IT회사인 A네트는 개발자도 양복에 넥타이를 매게 한단 말이지.
안 그래도 머리를 써서 머리에 열이 오르는데 넥타이까지 하게 해?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넥타이를 하고 일하는 개발자는 아무도 없었어.
이게 다 문 사장 때문이야. 이 사람이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산하의 화학회사 영업사원 출신이거든. '직장인은 슈트를 입어야 정신이 바짝 든다!'는 고귀하신 경영철학을 가진 분이야. 아니, 화학회사를 나왔으면 주유소나 차릴 것이지, IT회사는 왜 하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슈트를 입을 거면 여직원은 왜 정장을 안 입혀?
아... 문 사장 가족이 주유소를 하고 있지? 말을 잘 못했네. 그리고, 여직원은 예쁘게만 입으면 된다고? 하!!
야근할 때가 되면 다행히 넥타이는 풀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 일곱 시 반쯤 되었을까? 한 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웹사이트 개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을 때야. 파티션 뒤에서 이 차장이 부르더군.
"장 대리... 시간 되나?"
이 차장은 적어도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전형적인 아저씨였어. 희미해진 머리숱은 그렇다 쳐도 불룩 튀어나온 임신 중기 같은 배는 가히 예술이었지. 거무튀튀한 얼굴은 출장 많이 다니며 야외 활동을 많이 한 것 같지만 담배에 찌들고 몸이 안 좋아서 생긴 증상이라 확신했지.
"네, 차장님."
나한테 손짓으로 자기 앞의 의자를 끌어와서는 앉으라더군. 앉았지. 잠시 침묵을 하더니 헛기침을 하면서 말을 걸어왔어.
"장 대리, 지금 뭐 하고 있지?"
아... 이런. 머릿속에서 이성의 끈이 끊어지려고 투두둑하고 소리는 내는 데 급하게 붙잡았어. 어제 주간 회의 때 이미 보고를 했는데 또 묻긴 왜 묻는 거야? 부서 팀장이면 두 명 밖에 안 되는 직원들에게 분배한 일은 자기가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직원이 뭐 20명이나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참자...
"지금 기술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웹사이트 마무리 작업 중입니다."
"그래? 쩝..."
이 차장이 입맛을 다시면서 엉덩이를 들썩여. 왜 뜸을 들이는 거야 싶었어. 그리곤 말을 꺼내.
"장 대리가 개발할 게 하나 생겼는데 말이지..."
또 새로운 일인가? 에휴... 한두 번도 아닌데, 뭐. 지금까지 두 가지 개발을 동시에 하는 건 일상이었으니까...
"아, 네." 귀찮아서 짧게 대답하고 기다렸어.
"경남 ○○○군이라고 알지? 거기 군청 웹사이트 서브 시스템인데 블로그 시스템을 만들어야겠어."
눈이 번쩍 뜨였지. 뭐라구??
"... 블로그 시스템이라고 하셨습니까?"
"어. 로그인해서 블로그 개설을 신청해서 개인 블로그를 생성하는 시스템이야."
제가 지금 블로그 시스템을 몰라서 다시 되물은 게 아닙니다. 이 차장님아...
그 당시 티스토리는 서비스하지도 않았고, 네이버 블로그만 존재하던 시절이야. 2003년도에 서비스되었으니 아마 못해도 그전 년도부터 개발을 시작했을 거야. 대충 짐작해도 블로그 개발하는데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걸렸지 않을까 싶어. 진짜 짧게 잡아도 석 달은 걸렸겠지. 그것도 적어도 두세 명의 개발자와 한 명 정도의 웹 디자이너가 같이 개발을 해야 할 정도의 규모야. 그래서 다시 물어봤어.
"그걸 지금... 제가요?"
"그렇지, 장 대리가 할 수 있을 거야."
블로그 시스템이라니... 지금 내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건가 싶었어.
2005년 당시에 네이버 말곤 블로그라는 게 한두 군데밖에 없었는데, 네이버 블로그가 너무나도 인기를 끄니까 경남의 작은 군청에서 자기들도 군민들을 위한 서비스를 하겠다고 나온 거지. 유명해지고 있긴 했지만 티스토리도 없었으니 말 다했잖아? 아직 자리를 완전히 잡은 인터넷 서비스가 아닌데 지금 우리(!) A네트 같은 조그만 회사가 이걸 만든다고?
'도대체 왜? 와이?!'
거기에 이제 막상 IT일을 하면서 웹사이트 개발을 1년 반 밖에 안 한 초짜한테 만들라는 요청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됐어. 그래, 설마 나 혼자 하라는 건 아니겠지. 김 과장도 있고 최 대리도 있는데... 같이 하면야,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누가 누가 참여합니까?"
당연히 이야기를 꺼낸 이 차장은 팀장이니 프로젝트 매니저로 참여할 거고...
"장 대리 혼자."
야이 씨, 장난하나?
하긴 이때까지 모든 작업을 거의 혼자 해왔다, 뭐. 우리나라 굴지의 ○○전자 휴대폰 공정관리 시스템을 만들 때 혼자 힘으로는 힘들어 김 과장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지만, 그것도 개발 언어 학습과 핵심 기능 개발에만 도움을 주었고 나머지 연결과 웹사이트 전체 개발은 나 혼자 했으니 많이 도움을 받았다고는 할 수 없었어. 근데, 아무리 개발을 오래 하지 못한 내가 봐도 적어도 두 세명의 개발자는 필요할 거 같은 이 블로그 시스템 개발을 혼자서 다 하라고? 미친 거 아냐??
그래도 얘기나 들어보자 싶었어. 뭐 프로젝트 기간이라도 널널하면 죽이 되든 수프가 되든 흉내라도 낼 수 있을 테니깐 말이야.
"언제까지 완료해야 하는 겁니까?"
"음..."
침묵이 오래 맴돌았지. 뜸은 왜 들이고 있는 거야?
"팔 월 초까지 끝내야 하니깐."
아, 잠시만요! 지금 7월 말이거든요?
"이 주 정도 시간이 남았네."
"네?!!!"
진짜 머릿속에서 이런 문장이 맴돌았다.
'이 인간, 돌아인가?'
혼자서, 15일 만에 네이버 블로그 같은 시스템을 만들어서 ○○○군에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야? 아니, 그것보다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었다. 곧바로 떠오르던 것.
"혹시 이 프로젝트, 언제 받으신 거죠?"
"석 달 전, ○○○군청에서 의뢰를 받고 계약을 했지."
석 달 전? 그럼 뭐라도 했겠지. 나한텐 얘길 안 했더라도 말이지.
"그럼 두 달 반 동안 진행한 건요? 디비 설계나 화면 설계 같은 거요."
"없어."
할 말을 잃었다. 아주 심플하군... 한 게 없대.
"아무것도 안 하셨다고요? 왜요?"
"일은 받아놨는데, 개발에 참여할 직원이 없어서 킵 해놨었지."
아, 얼마 전 문 사장이 룸살롱에 가서는 저 말을 썼었지.
'내 이름으로 킵해 놓았던 양주 좀 가져다줘.'
라고 말이지.
갑자기 그러니까 왜 있잖아. 요새 유행하는 웹툰같이 과거로 회귀하는 기분이 들었어. 회귀를 하려면 아예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돌아가던가. 다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게 말이지.
쳇, 뭔 1년 반 전으로 돌아가는 거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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