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년간의 회사, 10번의 퇴사

일 찾아 삼만리 - G이앤아이 곤혹기, 상

by 유고 담요 2025. 4. 14.

윤 부장의 끈질긴 구애 끝에 E에스아이 가족들과 다시 뭉치게 되었어. 꽤, 재미있는 경험이지. 
2014년 세월호 사고가 났던 시끄럽던 4월 F플러스를 나가자마자 곧바로 G이앤아이에 들어갔어.
회사 사무실은 창원의 중심지 아파트 상가의 3층에 있는 이전 법무사 사무실을 바꿔서 들어가 있었어. 근처에 세무서를 포함한 여러 관공서가 있다 보니 법무사 사무실이 즐비한 층이었지. 거기에 뜬금없이 IT 개발회사가 들어간 거야.
쉴 새도 없이 곧바로 엔진 공장으로 출근하게 되었어. 그래도 E에스아이에서부터 4년 가까이 본 사람들이고 하다 보니 엔진 전산실 직원들까지 나를 반겨주더라구.
물론 그런 인사치레는 얼마가지 못했지.

E에스아이에서 우리가 작업했던 특수기계 서비스 관리 시스템을 1년 만에 갈아치운 H프로라는 개발사의 플랫폼이 엔진의 IT시스템을 하나둘씩 바꿔나가던 시기였지. 이전까지는 기존 사용하던 시스템을 수정을 하던 정도의 규모라면 H프로는 새롭게 프로젝트를 수주해 갔어.
한국○◇□에서 일하고 있을 때, G이앤아이 직원들이 엔진 3 공장에서 개발하던 것도 이 H프로의 개발 플랫폼이었어. 특수기계 서비스 관리 시스템을 수주했을 때 귀동냥으로 들은 프로젝트 비용이 10억이 넘었다는 걸로 알고 있었지. 엄청난 규모의 돈 아냐? 우리는 기껏 해봤자 많아 봤자 4억 정도에서 머무를 때, 이 회사는 엄청난 규모를 따내고 있었던 거지.

심지어 H프로는 자기들이 개발을 하지 않고 플랫폼만 팔아도 돈을 버는 거였어. G이앤아이 직원들의 3 공장 프로젝트가 그런 거였지. H프로 개발자는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아도 플랫폼 판매 비용만으로 1억은 넘는 비용을 챙겨가는 거야. 


윤 부장의 G이앤아이는 이제 내가 없이도 제안서를 쓰는 것에 적응한 것 같았어. 다시 입사하 전 E에스아이에서 개전작업을 했었던 특수기계 품질관리 시스템 신규 개발 프로젝트를 따내어 진행을 시작하고 있었던 거였어. 원래 프로젝트 수주 경쟁에서 다른 업체의 제안 비용은 비밀에 부치는 것이지만 공공연하게 퍼지는 소문 같은 거였거든.
H프로는 이전 작업하던 특수기계 서비스처럼 10억이 넘는 금액을 제시했는데, 우리 회사는 10억이 안되게 제안을 했으니 우리 G이앤아이로 결정되는 것 당연지사였어. 마치 처음 여기에 와서 길 선배의 F플러스를 밀어내고 E에스아이가 프로젝트를 따온 것과 데자뷔가 되는 느낌이었어.
그럼 뭐 해. H프로는 아무것도 안 하고도 플랫폼 비용 1억 상당을 가져가는데, 우리가 받은 10억 안 되는 프로젝트 비용에서 말이지. 나는 H프로의 개발 플랫폼에 익숙해져야 하는 시기였어.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반년 넘게 이전부터 사용을 해왔지만 나 같은 경우는 이제 처음 보는 거니까 말이야. 프로그래밍 언어도 다르고 하나 보니 적응하는데 몇 주의 시간이 필요하긴 했어.

"오빤, 다시 돌아간 게 더 좋아?"

수진이 핸드폰 너머에서 물어오더군. 평일 저녁은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통화를 했었어. 

"그럼... 오 년 가까이 일했던 사람들이라 훨씬 편하지."

"음... 그건 알지만 엔진 전산실 사람들이 대하기 껄끄럽다고 얘기했잖아, 오빠가..."

수진에게 E에스아이에서 일할 때 있었던 몇몇 사건들을 얘기해주었다 보니 그녀는 같이 일해본 적도 없는 엔진에 대한 자신만에 견해가 생겨있던 거였어. 나 역시도 그리 좋은 기억들은 아니지만 어쩌겠어? 일을 시키지만 돈을 주는 인데... 그래도 나의 일탈로 흩어졌다 반년만에 다시 뭉친 다섯 명이 거의 어벤저스 같은 느낌 같았지.

"일이야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할 순 없잖아? 근데 우리 회사사람들하고 같이 일하면 뭐든 다 이겨낼 수 있고 참을 수 있을 거 같아."

"그래? 그럼 다행이지... 그래도 부러워. 같이 오 년 넘게 일하는 동료가 있다는 게."

옆에서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거지.


H프로의 플랫폼은 완벽하진 않지만 잘 구성되어 있었어. 그래서 직원관리, 기본화면 등은 따로 손댈 필요가 없이 필요한 개발만 하면 되는 거였지. 사실, E에스아이에 있을 때 윤 부장에게 이야기를 내비쳐 도전해보려고 했던 건데 뭐 퇴사를 해버리면서 다 물거품이 되어 버렸지. 그래서 분석을 하려고 H프로 플랫폼을 보고 있으면 좀 빈정이 상하더라고.

것보다 다시 엔진과 일을 시작하니 다시 갑질이 시작됐어. 분명 개발 요구사항들을 들으면서 수집된 내용을 점검하고 전산팀 담당자와 특수기계 현업 담당자들의 사인을 받으려고 하니 '자기들은 권한이 없다'면서 사인을 거부하더니 막상 개발에 변경사항이 발생하자 한걸음에 달려와 말을 바꾸는 거야. 특수기계에 황 대리가 그랬지. 갑자기 개발 사무실로 뛰어 들어와서는,

"장 차장님, 지금 개발 중인 변제화면요. 좀 바꿔주세요. 화면을 봤더니 필요한 게 빠져있더라구요."

"아, 대리님. 갑자기 화면변경을 요구하시면 어떡합니까? 작업 중인데...

"아니, 안 그럼 현업이 못쓰겠다는데 어떡합니까?"

"그러니까, 현업이랑 얘기해서 요구사항 수집할 때 하셨어야죠. 그때 현업 바쁘다고 황 대리님이 다 하셨잖아요."

그러자, 드디어 갑들이 제일 잘하는 떼쓰기 기술을 쓰기 시작해.

"아, 몰라요."

"왜 요구사항 정의서 싸인 안 하셨어요? 이럴려고 안 하셨죠?"

"아, 몰라요. 바꿔 주세요."

뭐, 그나마 악을 쓰고 난리를 부리는 게 아니라 귀엽게 떼를 쓰니까 한숨을 쉬면서 해줄 수밖에 없지. 한 번은 너무 말도 안 되는 변경사항을 얘기해 버리니까 윤 부장이 쌍욕을 하며 개발실 문을 발로 차고 나가버린 일도 있었어. 

어찌 됐든 11개월간의 개발이 끝나고 H프로 플랫폼을 사용한 특수기계 품질관리 시스템 개발은 마무리되었지. 원래 10개월인데 또 담당자가 땡깡을 부려서 한 달 딜레이 된 거야. 지들은 그냥 한 달 딜레이지만 우리는 매출도 없이 한 달 딜레이니 타격이 큰데 그런 생각이나 하겠어?


한 해가 지나고 2015년 초 겨울이 되어서야 끝난 개발을 뒤로하고 G이앤아이 사무실로 돌아왔어. 지금까지 회사는 엔진 프로젝트 때문에 창업을 추천받고 회사를 차려서 두 건의 프로젝트를 했잖아? 개발을 요청할 다른 기업은 아직 없는 상황이라고. 그럼, 지들이 창업을 하라고 시켰으니 G이앤아이가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줘야 하잖아? 그런데, 더 이상 말이 없네?

그때부터 E에스아이에서 겪은 고통과 같은 시련이 똑같이 시작됐어. 일없이 벌어놓은 돈을 까먹기 시작하는 거지. 내가 F플러스를 뛰쳐나왔잖아. 갑자기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하더라고. 1년 만에 이런 일이 벌어지니 답답할 수밖에. 

아무 일도 없이 10평 약간 넘는 사무실에 출근해서 의미도 없이 노트북을 열고 파일정리나 하고 있던 2016년 1월 초, 윤 부장이 나를 조용히 불렀어.

"장 차장, 중요한 이야긴데..."

윤 부장의 중요한 이야기라는 말에 조용히 맞은편 의자에 앉았어.

"지금, 우리가 일이 없는 건 알고 있지?"

말이라구...

"네, 심각하죠."

더 말을 덧붙이고 싶었지만 윤 부장의 입장에서도 얼마나 답답할까 싶어서 그냥 참았어.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엔진에서 일이 하나 들어오긴 했어. 투입인원은 한 명으로 정해졌는데 거기에 갈 사람이 장 차장 자네밖에 없어."

서울까지 올라가 시스템 개발을 하는 마당에 혼자서 서울? 뭐 못 갈게 어딨어라는 생각이 들었지.

"어딘데요?"

"... 멕시코."

"네?!"

잘못 들었나 싶었어. 어디? 멕시코? 세계사 시간에 공부한 미국 아래에 있는 나라? 한 번씩 저녁 뉴스에 나오는 사건사고 많은 나라??

"멕시... 코 라구요?"

되물었더니 윤 부장이 고개를 끄덕이네.

"그래, 제 차장한테도 얘길 해봤는데 결혼한 사람이다 보니 도저히 안 되겠다고 그러네. 임 과장은 회사나 엔진 솔루션 데이터베이스 문제를 대응해야 하니 안되고... 장 차장 자네밖에 없어."

"하아아...."

한숨이 길게 늘어나졌어. 갑자기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더라고. 지금 회사에 들어온 일은 이게 전부잖아? 누구라도 일을 해야 회사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것이었지. 하지만, 멕시코는 리스트에 없던 거잖아. 하다 못해 중국이라고 해도 아아, 그래요? 언제 가나요. 라며 대꾸라도 했을 텐데 이건 대꾸도 못할 지경이었어.

"엔진 전산실에 이 차장 알지?"

"네, 알죠. 요새 안보이시던데..."

"요새는... 벌써 멕시코 간지가 3년이 넘었어. 그 이 차장이 엔진 멕시코 공장 전산실 팀장으로 가 있거든. 이 차장이 개발할 게 있다고 급하게 사람을 보내달라고 그래. 진짜 장 차장 밖에 갈 사람이 없어. 좀 생각을 해주라."

얼마나 사정이 급하면 윤 부장이 이렇게 애원을 할까 싶었어. 그래서 그 자리에서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하루만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얘기를 끝냈지. 그냥 출장 가야 하는 위치가 어디인지만 물어봤어. 처음 들었을 당시에는 제대로 들었는지 몰랐지. 멕시코 몬테레이라는 도시를 말이야.

퇴근 후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멕시코에 대해서 찾아보기 시작했어. 정말 무지막지하더군.
심각하게 높은 범죄율과 살인율, 마약 카르텔, 그에 반한 무능한 정부...

"오빠, 괜찮을까?"

스마트폰 너머의 수진의 목소리도 걱정스러워 보였어.

"하, 모르겠어. 하필이면 나야, 왜??"

"그러게... 딴 사람도 있을 텐데."

"이거 목숨 걸고 가야잖아. 수진은, 내가 갔으면 좋겠어?"

"나야 오빠가 안 갔음 하지. 안 가는 게 좋아. 그 위험한 곳을 왜 가."

하소연은 할 수 있지만 수진에게 얘기한다고 답이 있는 건 아녔지. 어머니에게도 걱정을 털어놓아 보았어. 하지만, 그렇다고 심각한 치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못하겠더라구.

다음 날 회사로 출근해 윤 부장에게 거절 의사를 밝혔지. 그랬더니 윤 부장도 알겠다면서 더 이상 묻지를 않네? 다행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웬걸.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 윤 부장이 다시 불러. 멕시코 이 차장으로부터 다시 요청이 왔다면서,

"일단 엔진에 가서 이야기는 들어보자. 이 차장이 자꾸 이야기를 하니까 어쩌겠어?"

그래서 이야기만(!) 들어보려고 엔진으로 찾아가 담당자와 미팅을 가졌지. 두 달이라고 그래, 출장 기간이... 좀 긴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도중에 처음 만난 담당자가 이런 이야기를 해.

"이 팀장님이 장 차장님이 오신다고 하니까 무척 반가워하시던데요?"

"네?"

이 차장이 한국에 있을 때 우연히 알게 된 거였지만, 다른 과라도 같은 대학 2년 선배더라고. 물론 그러면 엄청 먼 사이지만, 사회 나와서 같은 대학이란 것만으로도 또 반가워하고 하잖아. 
하지만, 난 간다고 한 적이 없는데... 거기 미팅에 따라간 게 실수였지.
심지어 퇴근을 하고 집에 와보니 어머니는 어느새 점집에 가서 내가 멕시코 출장 가는 거에 대한 점까지 보고 온 상태였어.

"아들, 너 멕시코에서 일하고 오면 앞으로 길이 더 창창하게 펼쳐진다는 데? 좋다는데 한 번 다녀와봐."

와, 엄마가 아들을 사지로 내모는 거야!


2월 중순, 창원에서 인천까지 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인천 국제공항으로 가게 됐어. 수진도 나를 따라 공항까지 가게 되었지. 마지막 헤어질 때 눈물을 글썽이던 그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수진은 혼자 내려가야 하잖아.

이때부터 고난이 행군이 시작되었어. 14시간의 비행과 몇 시간의 환승 대기, 그리고 다시 2시간의 비행 등으로 총 26시간 만에 도착을 한 멕시코는 생각보다 평온해 보였어. 대시 내 몸과 정신이 정반대의 상황이었지. 한 번에 7시간 반 비행으로 끝났던 인도 출장은 정말 편안한 거더라고.

심지어, 환승 센터에선 입국 심사까지 있었어. 그동안 질문이라고는 한 번도 없던 외국 여행에 처음으로 물어왔어.

"멕시코에 가는 목적이 뭐죠?"

파란 눈의 콧수염을 기른 백인 검사원이 웃음기 없는 얼굴로 나에게 물어왔어. 짧은 영어실력으로 대답을 했지.

"그룹 일로 출장을 갑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밝게 웃으며 재자 물어오네. 

"오, ◇그룹 직원인가요?"

여기서도 한국의  ◇그룹은 이름이 꽤 있는 가 보더라구.

"아뇨, 협력업체 직원입니다."

라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행운을 빈다'며 보내주었어. 생각보다 많은 한국인이 이렇게 멕시코 몬테레이로 넘어가는 것 같았어. 공항 입구에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온 직원이 기다리고 있어 편하게 숙소로 갈 수 있었고, 한국에서 출발한 지 30시간이 넘어서야 침대에 몸을 눕힐 수 있었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