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같은 중소기업 - E에스아이, 중

2025. 3. 13. 10:3920년간의 회사, 10번의 퇴사

2010년이 지나 연봉협상이 끝난 뒤에 E에스아이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어. 이전의 작은 조립식 공장 건물에서 조금 더 큰 조립식 공장 건물로 이전한 거야. 거기다 1층에 회사 식당도 마련되고, 나중을 위한 널찍한 여분의 공간도 1층에 준비가 되었어. 개발팀에서 개발할 시스템이 돌아갈 서버도 추가로 구매해 서버실도 따로 구성해서 투자를 해 나가더군. 인도 출장 즈음해서 내가 회사에 필요한 데이터베이스를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개발자가 필요하다고 하니 그쪽으로 전문가인 임 과장을 채용했어. 임 과장 채용 때는 내가 면접에 같이 들어갔지. 하하하! 임 과장은 나보다 네 살이나 어린데도 점잖고 조용한 성격이었어. 맡은 일도 꼼꼼히 잘해서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해 나가니 회사 시스템도 성능이 더 좋아졌지. 

그런데 일을 받아오던 에서 더 이상 일이 안 들어와. 이유는 중국에서 세계 지하철 프로젝트를 저가로 후려치다 보니 잘 모르는 나라들이 중국 기업에 일을 몰아주었고 그 결과 ○는 프로젝트를 따오는 일이 없고 그 영향으로 우리 E에스아이도 일이 없어진 거야. 직원이 80명 가까이 되는데 놀고 있을 순 없잖아. 박 사장은 친분이 있는 ◇그룹의 인맥을 총 동원해 그룹사 중 하나인 엔진을 소개받았어. 역시 학연, 지연이지. 엔진 또한 역시 엄청나게 큰 생산공장을 가진 회사로 자동차 엔진이나 여러 기계들을 만들어내는 이름난 회사야. 이 회사에서 핵심 기계를 만들어 납품 후에 고객 서비스를 관리하는 현재 사용 중인 서비스 관리 시스템을 중국어로도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 수정 프로젝트가 있다고 이야기를 전달받은 거야.

아직까진 한국어, 영어로만 사용 중이었는데, 중국어로 되어 있지 않다 보니 중국 고객사에서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단 거지. 이전 개발회사가 프로젝트 비용을 좀 과하게 불러서 골치 아프던 차에 우리 회사에게 제의를 하는 거야. 프로젝트 비용을 좀 줄여서 들어오면 우리에게 일을 주겠다는 거지. 자기들은 비용을 줄이고, 우리는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는 거고. 1억이 안 되는 작은 일이니 윤 부장이 내가 선두에 서고, 임 과장과 둘이 맡아서 하래. 디자인 변경 건은 제 차장이 회사에서 도와준다는 거지. A네트에서 개같이(!) 일 한 덕에 제안서도 내가 쓰고, 여섯 명의 엔진 경영진 앞에서 발표도 내가 하고 해서 어렵지 않게 중국어 특수기계 고객관리 시스템 개선 프로젝트를 따내게 됐어.

이게 인도 프로젝트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여간 성가신 게 아녔어. 일단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중국어로 번역할 모든 한글 문장을 워드에 옮겨서 통번역 회사에 보낸 뒤 몇 주 동안 기다려야 했지. 이것도 한 번에 안 끝나니 또 빠진 문장을 찾아내서 또 보내고. 것보다 중요한 건 한국어와 영어로만 운영되던 데이터베이스 서버를 중국어까지 사용할 수 있게 설정을 바꿔야 하는 거였어. 이건 또 회사 업무 중엔 못해. 새벽에 시작해서 다음 날 오전에 직원들이 시스템을 사용하기 전에 다 작업을 해야 하는 거야. 아마 내가 시작했으면 몇 주가 걸릴지 모를 일이었는데 데이터베이스 전문가인 임 과장에게 맡기니 일주일 만에 준비를 마치고 새벽 0시부터 시작해서 새벽 5시가 되니까 모두 마무리를 짓더군. 역시 전문가!

 

나와 임 과장이 일하는 작업실은 전산실 구석도 아닌 무슨 기계작업하는 사람들이 창고로 쓰는 곳에 공구들이 보관되어 있는 한 칸짜리 방이었어. 기름냄새가 배어 나오는 곳인데 큰 규모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좋은 장소를 배정 못 받았다나? 하! 한 마디로 대충 알아서 일하라는 거지. 조금 천대받는 느낌이었어. 여기서 일하면서 좋은 점은 엔진 전산실 직원이 자주 못 온다는 거야.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고 하니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일할 수 있더군.

정말 웃긴 일은 기존 소스코드를 열어보고서 시작됐어. 소스코드를 분석을 해야 하니 전부 받아서 작업 노트북에 다 설치를 했지. 여기도 ◇그룹에 속해있으니 네트워크 감시는 똑같았어. 소스를 열어서 제일 위에 주석을 보는데, F플러스 길 문성? 특이한 성씨다 보니 주변에 같은 사람이 거의 없을 이름이잖아. 누구냐면 대학 선후배 모임에서 만난 10년 선배 이름과 똑같은 거야. 이 선배도 개발 회사를 차려서 대표로 있다는 얘기는 듣고 선후배 모임에서 인사를 한 번 해보긴 했었지. 그래서 대학 동기에게 연락처를 물어 전화를 걸었어.

"선배님? 장 연성입니다. 기억하십니까?"

"어, 연성이. 기억나지.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선배님 회사가 어디라셨죠?"

"우리 회사? F플러스. 그건 왜?"

와, 이런 우연이... 기존 시스템을 개발한 사람이 길 선배란 거잖아!! 

"저, 지금 엔진 특수기계 고객관리 시스템 소스코드 열어서 보고 있습니다. 선배님, 성함이 나오네요!"

"그럼 연성이 지금 네가 있는 회사가 E에스아이인 거야?"

이미, 길 선배도 우리 회사를 알고 있던 거였어. 그렇다고 하자 바로 이야기를 이어가더군.

"아니, 그 시스템 개발 초기에 프로젝트 비용이 높다고 깎아달래는 거야. 나중에 개선이나 추가 개발이 있으면 더 비용을 후하게 쳐주겠다고 하면서 말이지. 그래서 이윤도 거의 없이 첫 프로젝트를 했거든. 그랬는데 이번에 프로젝트 비용이 비싸다고 갑자기 공개 입찰로 바꿔버린 거야."

"아, 그래서 저희가 된 거군요. 저희 보고도 프로젝트 비용을 낮춰주면 바로 수주되도록 해주겠다고 하던데, 늘 그런가 봐요?"

"그렇지, 연성이 너네도 너무 그 회사를 믿지 마. 너네 회사 이윤을 생각해야지."

당연한 이야기였어. 우리에게 일을 준다고 엔진이 내 편은 아닌 거잖아? 그들도 자신의 이익에 맞으니까 우리에게 제안을 한 거고, 거기에 반하면 뭐 일을 주지 않았겠지. 대신 길 선배에게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 대충이라도 조언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어. 

 

나머지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됐지만, 어디에서 일하나 겪는 문제는 하나 있지. 개발 중간에 개발 화면의 처리 내용을 바꿔서 개발해 달라는 거야. 이미 서로 확인해 놓은 화면 개발 순서나 처리 방법을 개발 도중에 바꾸면 다시 개발하는 데 시간이 걸릴 거잖아. 며칠이 더 걸릴 수도 있거든. 그렇게 바꿔달래 놓고 시간이 늦춰진다고 투덜대면 딱 두마디야.

"미안합니다. 그래도, 바꿔주세요~"

가장 열받는 일 중에 한 가지가 있었지. 개발이 마무리될 때쯤 중국 상해로 가서 중국의 요구사항도 조금 반영하고 중국 직원들에게 사용 교육도 해서 프로젝트를 끝내는 일정이었어. 엔진 전산실에 1살 연상의 송 과장과 미팅 후 나온 출장 기간이 3주였어. 좀 여유를 가지고 일을 처리하잔 거지. 그리고 하루 정도는 동방명주탑도 보러 가는 여행시간도 갖자는 거야. 얼마나 좋아? 그런데, 이걸 전산팀 부장에게 결재 서류를 올렸더니 한다는 소리가,

'2주로 줄여.'

였대. 3주짜리 출장 일정을 1주나 줄이라고? 왜 그런지 알아? 자기네들이 예전에 출장을 가면 시간을 여유롭게 잡아서 출장업무가 끝나고는 하루 이틀 놀러 다닌 거였어. 자기들은 그렇게 해놓고 부하직원이 출장 가서 노는 꼴은 못 보겠다는 거야. 하! 치사빤스들... 그러다 보니 상하이에 출장을 가서는 송 과장과 나는 매일 새벽 2시까지 일을 하고 숙소에 돌아와 곯아떨어지기를 반복하고서야 2주 만에 일을 마칠 수 있었어. 상해의 랜드마크, 동방명주탑? 일 마치고 공항으로 가면서 멀찌감치에서 본 게 전부 다였음. 뭐, 일 빨리 마치고 빨리 탈출할 수 있으면 좋은 거지.

 

회사가 더 이상 ○과의 업무가 없어지자 어떻게 까지 됐는지 알아? 우리는 창원 회사가 서울의 지하철 공사의 일까지 하게 되었어! 부산 경남 업체가 서울까지 올라간다는 건 무슨 의미냐. 주말이면 저녁쯤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이 걸려 서울에 올라간 뒤 새벽에 도착한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일을 할 건물 근처에 있는 고시원까지 택시를 타고 가는 거야. 그런 다음 고시원에서 몇 시간 자고 일어나서 개발일을 하러 가. 가는 곳이 그 고시원 건물 바로 2층의 빈 사무실이야. 무슨 얘기냐 서울의 지하철 공사 건물에는 자리를 내줄 수 없으니 개발사 너희들이 건물을 빌려서 일을 하라는 거지. 그렇게 해서 했던 일이 지하철 시설물 고장분석 시스템이었어.

6개월 프로젝트에 ◇엔진에 마무리를 매달려 있어서 2개월은 참여 못하고, 4개월 동안 난 서울에 뒤늦게 참여하게 되고, 임 과장은 골치 아픈 인도 시스템 처리하러 인도로 날아가고 뿔뿔이 흩어졌지. 생각도 하기 싫은 서울 프로젝트는 별 탈없이 끝이 나긴 했지만, 고시원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일을 하는 닭장 생활을 하면서 국내 출장의 지저분한 모습은 다 보는 경험을 하게 됐어. 심지어 시스템 오픈을 12월 26일에 맞춰서 공사 담당자들은 휴가를 보내고, 개발하는 우리들만 경비 아저씨만 돌아다니는 공사 건물에서 마무리 작업을 하는 뭣 같은 경험도 겪으며 갑과 을 중에서 을이 얼마나 서러운지를 재차 깨닫게 되었어.

 

그다음 해부터는 고통의 해가 되기 시작했어. 연봉 동결, 회사로 들어오는 프로젝트는 0건. 나도 나름 투자랍시고 지인을 통해서 부동산에 쪼개기 투자로 돈을 묶어 두기 시작해서 월세라도 받아볼 심산이었지. 그러니 돈은 더 없기 마련, 그래서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기로 마음먹었어. 처음엔 힘들었지만 나름 자전거로 출퇴근도 습관이 되니까 시원하고 재미있는 데다 건강에도 좋은 거 같더라고. 뭐, 근육은 붙어도 호흡기로 매연이 들어오니 쌤쌤인가 싶기도 하지만...

잘 타고 다녔는데 1년 만인가? 전날 회식을 하고 술기운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하는 도중, 인도와 도로 사이 단차에서 자전거를 탄 상태에서 점프를 하다가 앞바퀴만 비정상적으로 높게 들리는 바람에 중심을 잃었고 그와 동시에 엄청난 고통으로 인도 위에 쓰러진 거야. 자전거 체인과 페달 사이에 오른쪽 발목이 끼어들어가 버린 거였어. 전치 8주... 사람 앞일은 진짜 아무것도 모르겠더군.

수술이 끝난 뒤 병실에서 회복을 하고 있던 와중에 핸드폰으로 갑작스러운 문자가 하나 왔어. 2008년까지 취업 때문에 연락을 주고받던 수진이야. 거의 4년 만에 연락이 온 거였어. 이렇게 반가울 수가... 문자로는 긴 얘기는 힘들 거 같아서 전화를 걸었지.

"수진 씨, 오랜만이에요. 어디예요?"

"잘 지내셨어요, 장쌤? 지금 부산이에요."

당시 학생들에게 친하게 불렸던 '쌤'이라는 호칭을 들으니 웃음이 나. 강사를 그만 둔지가 얼마나 됐는데...

"부산?"

"네. 직장 때문에 다시 내려왔어요."

"몇 년 만이죠? 진짜? 근데, 물어보고 싶은 게 뭐예요?"

수진은 내게 자신도 직업학교 강사가 되고 싶다는 얘기를 했어. 결국 프로그래밍 쪽으로 취업은 못하고 다시 CAD 설계 쪽으로 계속 일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잦은 야근으로 피로가 쌓여가고 대학을 못 간 고졸자에 대한 임금 차별, 거기에 조용하고 말수가 없는 성격에 일과 사람에 치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다고 얘길 해. 그래서, 나처럼 직업훈련교사가 되어서 기계설계 디자인 쪽으로 CAD를 가르치고 싶다는 거더라고. 내가 수진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이라곤 D아카데미에 김 팀장이나 같이 일하면서 친하게 지냈던 몇몇 강사를 통해 추천을 해줄 수 있는 거였지만, 거기도 대졸 이상에 실무 경력 5년 이상인 사람을 원하니 첫 번째 조건에 맞지가 않았던 거야.

나도 학연, 지연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그녀를 도와주소 싶었지만, 당장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지. 어쩌겠어. 사실대로 얘길 해야지... 전화 목소리로도 실망하는 기색이 느껴지더군.

"아... 어쩔 수가 없군요."

"그래요. 그래도 수진 씨. 나도 한 번 알아볼게요."

"아, 정말요? 그렇게 해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그래도 내 편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 건지 나는 잘 알지. 병원이라도 노트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 구직 사이트 X코리아에서 부산 직업훈련 기관 중에 CAD 디자인을 가르치는 학원들을 찾아봤어. 직업학교는 역시 지원 자격에 맞지를 않더라구. 수진이 일할 수 있는 곳은 부산 서면에 있는 컴퓨터 학원으로 프로그래밍부터 CAD 디자인까지 가르치는 직업훈련 기관이었는데 늘 강사 인력이 부족해서 허덕이는 곳이라는 곳을 알았어. 그래서 이런 내용을 수진에게 보냈더니 이미 그녀도 확인은 했었지만 겁이 나서 지원을 꺼리고 있었다더군.

나는 이전 취업활동 때처럼 겁먹고 물러서는 행동은 더 이상 하지 말라고, 무조건 집어넣으라고 압박을 했지.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안되면 어때, 다시 딴 곳을 찾아야지. 아니나 다를까. 강사가 부족하니 면접제의가 오지 않겠어? 그리고 수진은 면접을 봤댔고, 한 2주 뒤 합격을 해서 강의를 할 거라고 하더군. 난 계속 부러진 다리를 회복하는 상태였고 뭐 그러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그녀는 다시 연락이 없어지더군. 말은 나중에 월급 받으면 한 턱 쏘겠다고 했지만 그런 얘기 늘 듣지만 누구도 한 턱을 안 쏘거든. 하지만 그런 거 있지? 왠지 수진과의 인연이 또 여기까지는 아닐 거 같은 느낌...

 

E에스아이로 바로 돌아간 게 아니라, 병원에서 퇴원하자 곧바로 ◇엔진으로 목발을 짚고 출근하게 됐어. 병원에 입원한 사이 ◇엔진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따내서 특수기계 품질관리 시스템이라는 걸 개선하는 작업에 들어가 있더라구. 이번 프로젝트는 윤 부장, 제 차장, 임 과장, 프리랜서 개발자 한 명과 나까지 다섯 명이 참여하는 개발이었어. 좀 규모가 커졌다는 얘기지. 그런데 말이지, 이상한 걸 발견했어. 서울의 지하철 공사에서 4개월 개발을 하고 별다른 일이 없어서 몇 개월 쉬었다고 치더라도 1년이 되기 전에 만들었던 게 특수기계 고객관리 시스템 중국어 프로젝트였는데, 그 사이 특수기계 고객관리 시스템을 아예 새로 개발하고 있더라구. 그것도 H프로라는 들어본 적이 없는 서울 IT 회사에서 말야.

무려 10억 정도 되는 프로젝트라는 걸 들었어. 우리는 1억 도 안 되는 돈으로 개선 프로젝트를 맡겨놓고는 이 회사에는 10억을 그냥 턱 하고 내놓고는 개발을 시키는 거지. 인원도 7, 8명이 되는 거 같았어. 아니, 그럴 거면 나랑 임 과장은 중국어를 쓸 수 있게 다국어 데이터베이스 변경 작업을 새벽에 하고, 몇 개월동안 고생해서 중국어로 만들어서, 3주 출장을 2주로 줄여서 매일 새벽까지 일하게 하는 그 짓거리를 왜 한 거냐고? 그냥, 그런 개발을 1년 앞당겨서 했으면 됐잖아?? 무지 기분 나쁜 거지. 1년도 안 쓸 시스템에 그런 고생을 했다는 게 말이야.

계속...